하느님 나라 의로움, 공동의 선과 평화의 길(202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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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58회 작성일 21-03-13 15:24본문
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아라.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아라."
하느님 나라, 그분의 의로움이 꼭 와 닿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며,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시지만, 그 의로움으로 살라. 고 하시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머뭇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길. 사랑하기 자비를 베풀기. 진리를 찾고 선을 따라 살기. 정의와 공정을 찾기 등을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전례와 성사에 참여하기, 말씀을 읽고 공부하기 등도 생각합니다. 한편 예수님의 복음을 그 말씀으로 전하기 등 선교도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하느님 나라는 단지 예수님의 가르침의 일부만을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특정한 신심이나 활동, 전례의 참여와 성사생활 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세상살이의 총체적인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것이고 만나는 모든 대상과 상대의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인 선행입니다. 종교적일수 있고, 사회적, 국제적, 정치적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총체적 공동선의 표현입니다.
근본주의적 종교 활동은 상대 가치와 종교를 배타적으로 바라보고, 상대적으로 배격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IS, 프로테스탄의 보수 근본주의, 각 종교의 한 편으로만 규정하는 호교주의 등이 상대 종교와 가치에 대해서 적대적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이라크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슬람 가운데서 근본주의가 아닌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와 세계의 연대와 공존, 평화를 논했습니다. 교황께서 가톨릭 근본주의나 호교론적 기준에서 사고하고 행동했다면, 그들과 세계 평화에 대한 연대와 공존의 의견을 나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 입장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의 보편적이지 않은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면 근본적 가치가 다른 종교 자 종교 상대의 적대적인 교황을 만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 곤경과 위험에 처하고, 죽음의 위협과 그 상황에 몰리고 있는 세계적 차원에서 단지 자기 종교의 근본 가치와 호교론적 가치에서 그 입장과 사상만을 고수한다면, 세계의 죽음의 절망적 상황을 어찌 바꾸고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 주신 것은 단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나 그 종교의 가치만을 가진 이들만이 아닌 모든 이들, 보편적 모든 이들의 구원입니다. 상대의 상이한 종교, 사상, 이념, 정치, 사회, 문화를 넘어선 수용과 만남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상대의 종교의 공동체의 선함과 아름다움과 착함을 통해서 모두를 살리는 평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함께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인간 사랑의 구원의 길을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와도 만날 수 있고,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종교심과 신심으로 살아가면서, 나와 다른 사상과 이념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정치적 이념과 가치를 달리하여도 그들과 함께 만나 공존과 공감, 연대와 협의, 그리고 공동선과 평화를 나눌 수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의 보편적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보편적, 공번된 이라는 가톨릭의 길. 그것은 주위와 만남, 사건과 일에서 순식간에 죽음과 그 문화로 귀결될 것을 벗어나고 바뀌도록 진정한 평화와 구제를 위한 공동체의 길을 의미합니다.
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공동의 선을 지향하고 또 걸어갑니다. 다른 종교 사상 이념과 가치와 활동, 상대적 활동과 삶의 여정을, 깊이 성찰하고 바르고 참되게 살아있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합니다. 이 모든 일이 가톨릭의 거룩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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