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정서와 감정의 회복을(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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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33회 작성일 21-02-18 10:21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어린 자녀가 잘못하면 그를 쉽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얘야, 다음부터 그렇게 하면 못쓴다. 그렇게 하지 말아라."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청소년 자녀가 그렇게 하면 "너 그렇게 하면 가만 안놔둘 거야!" 합니다. 어른이나, 다 큰 사람이 잘못하면 "이번이 몇번째야, 이 살릴? 죽일? ... 이 웬수? 같은 것아!" 말합니다.
세대가 낮은 데서 높아질 수록 용서의 강도가 낮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어린 자녀가 잘못했을 때, 그가 상처 받지 않고 격려와 위로를 겸해서 '타이르는 용서'가 가능하지만 나이가 들어가거나 든 세대에 대해서는 용서에 대해서 완급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상 어린 자녀에게만 타이르는 용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 어른, 노년들에게도 타이르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부지 부식간에 잘못을 하고 그릇된 행동을 합니다. 그때마다 부모나 교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질책을 받거나, 야단을 맞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알고 수용할 수있으나, 사람과 환경과 처지와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서 받아들이거나 수용하지 못한채 흘러 갑니다.
비록 상대는 올바로 바르게 말하고 훈계하고 또 야단을 치지만 상대의 수용 정도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조금만 받아들일 수도, 아니면 전혀 못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특히 제아무리 그 말이 옳바르다 해도, 그의 정서나 감정에서 수용할 수 없으면 바르고 맞는 말이라도 수용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잘못했거나 잘못되어진 사람에게 바른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그가 과거에 정서의 상처, 감정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정서적 상처를 받은 사람은 세대를 달리하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 상처가 회복되거나 치유되지 않은 체 남았습니다. 계속적을 바른 일이 서로 소통되지 않는 것 먼저 정서적인 화해가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되어야 용서의 차원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가 종교적이거나 신심적이어도 정서적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옳고 그른 것을 수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화를 내거나 격노하고, 결국은 서로 화해와 용서하지 못한 채, 등을 지고 마는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귀결되는 것은 서로의 정서와 감정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특히 어떤 상대와의 대화에서, 자녀나 형제, 가족, 이웃과의 대화에서 평행선이 진행되고, 함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서로간의 감정과 정서가 수용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환경이 있습니다.
생각하고 하는 말과 가치가 옳다고 하더라도, 그 하던말을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내 법과 논리가 맞더라도 그 것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이성과 가치과 합리적이라도 그것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정서와 감정을 회복시키기 바랍니다. 상대의 감정과 정서을 온유하고 평화롭게 대하기 바랍니다. 상대의 마음을 위로와 격려와 함께 만나고 대화하기 바랍니다.
용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서와 감정의 평안에서 시작됩니다. 비록 내가 하는 말과 가치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선과 참됨에 부합하고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상대의 정서와 감정의 바탕과 여유에서 말을 해야합니다. 용서가 최우선이고 그것을 강조하고 선택하고 싶지만, 오히려 용서의 강직함을 뒤로 미루고 상대의 정서와 마음과 감정과 소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의 잘잘못을 식별하고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런 현명한 용서의 과정, 곧 정서와 감정을 평안하게 하는, 필요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용서에서 서로에게 있는 정서와 감정을 평안하게 하고 순화시키는 일을 하기 바랍니다. 그런 평안과 온유함을 얻는 노력은 성령께 희망을 두고, 그분의 뜻에 맞갖게 하는 일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를 생각하고, 용서를 이해하면서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정서와 감정을 순화시키기 바랍니다. 그리고 상대의 정서와 감정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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