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기도를 드리며(2024.12.12)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49회 작성일 24-12-12 09:52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화가 납니다. 분노합니다. 그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미워는 하지만, 그러나 증오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행위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는 그의 행위가 올바르지 않고 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의 행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용납하지 않는 이유는 의롭지 않음, 그 불의함 때문입니다.
그의 올바르지 않음과 불의함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 스스로가 풀지 않음에서 그를 받아들임도 수용도 화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용서하지 못함은 우리의 허물과 부끄러움 그리고 의롭지 못함 때문이 아니라, 그의 불의와 악행 때문입니다. 그가 불의함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불의함에서 곧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그 마음을 잠시 갖는다고 해서 그 용서가 되지 않으며, 하느님께서도 용서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공의로우심. 그분의 의로움은 정의의 공의로움이고, 그리고 자비의 공의로움입니다. 성경에서 당신의 공의로움은 불의와 악행, 그들의 우상 숭배에서 정의의 심판을 행하시지 않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정의를 행사하신 후, 그 뒤에 당신의 자비의 공의를 행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 탈출 후, 여러 차례, 그리고 끊임없이 주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때 마다 그분은 그들의 악행과 죄를 참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벌을 받고 용서를 빈 후, 주님은 당신의 노여움을 푸셨습니다. 코라와 다탄과 아비람이 반역했을 때, 모세와 맞섰을 때, 그들의 발밑의 땅바닥이 갈라졌습니다. 땅은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안, 그리고 코라에게 달린 모든 사람과 재산을 삼켜버렸습니다(민수 16,31-32).
하느님의 공의로우심, 곧 당신의 의로우심은 정의와 자비입니다. 그런 우리는 그런 정의와 자비 앞에 서 있으며, 세말의 최후 심판에서도 이 정의와 자비의 하느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용서. 곧 용서에서 정의와 함께 자비를 생각합니다. 정의를 실천해 가는 것도 용서의 앞이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 또한 용서의 뒤입니다. 이 정의와 자비가 함께 걸어갈 때 진정한 용서가 됩니다.
악행을 저지르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정의를 선포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자비도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 비를 내려 주시기 때문이다(마태 5,45). 하느님께서는 악인조차 죽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 악인이 그 악행에서 돌아서서 참회와 회개로서 하느님의 정의와 선으로 돌아오고 구원을 얻기를 바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아흔 아홉의 양들을 놔두고, 한 마리 어린 양까지도 찾아가서 안고 돌아오는 착한 목자 주님이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성령을 청합니다. 성령이여, 오소서! 하고 봉헌합니다.
용서할 수 없을 때,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 때도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느님 성령께 의탁합니다. 성령께서 이 선과 악, 죄와 악행을 넘어서 역사하시기를 청합니다. 성령이여, 오소서!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용서를 위하여 악인을 향해서도 기도합니다. 성령께 당신 역사를 이루시도록 기도드립니다.
이재을 신부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