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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청함, 구원의 길(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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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98회 작성일 21-01-0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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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마태 7,7-8

 

  내가 누구에게 바라는 것. 청하는 것. 그것은 궁극적인 것은 '생명'에 있습니다.

  길가에 노숙하는 형제가 동냥하고 있습니다. 그 동냥은 하루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살아있기 위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 그것도 삶을 위해서 입니다.

  하느님께 기도, 간청하는 것. 그것은 삶, 그 생명을 위해서입니다.

 

  오늘 청하는 것이 있습니까? 구합니까? 누구에게 요청하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내게 필요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나와 모두의 생명을 위한 길입니다.

  그것이 삶, 생명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구함과 기도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바라고 청하고 구하는 것은 '생명'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나자렛 고향에서 삼십 여년을 살고 일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가족 친지들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삼십 여년이 끝나가는 날, 그는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역인 갈릴래아 카파르나움에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리를 잡았다. 고향 나자렛에서 삼십 여년 자리를 잡은 것과 또 다른 자리잡음이었습니다.

  고향의 가족과 혈연과 가정의 일을 위한 나자렛 생활이었다면, 갈릴래아 카파르나움의 '자리잡음'은 또 다른 원의 희망, 구함 청함, 실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자리잡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야 하는 당연지사에 까지 얼마나 노심초사, 고심을 했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자기 이해와 식견과 희망과 결단을 가지고 기도했었을까요? 더욱이 어머니를 뒤로 하고, 자기의 모든 일과 노동과, 친척과 친지들을 뒤로 하고 새로운 곳. 그곳에서 하늘 나라를 위한, 현세적, 세속적 가치를 뒤로 하는, 결단을 위하여 얼마나 삼초고려(三焦考慮)하였을까요?

 

  예수님의 오랜 시간의 고뇌의 기도는 나자렛 고향을 떠나, 하늘 나라의 복음의 삶의 디딤돌인 카파르나움에 자리를 잡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며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었습니다(마태 4,23).

 

  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고뇌의 기도는 곧 세상의 소외된 이와 가난한 이 그리고 병든 이들 위한 고뇌의 기도와 결단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장소인, 카파르나움, 그곳에 자리를 잡게 했습니다.

  바라는 것, 희망하는 것, 구하고 청하는 것은 '생명'에 궁극적임이 있습니다.

 

  지금 바라고 희망하는 것 그리고 청하고 구하는 것이 '생명'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생각합니다. 그것을 성찰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 희망하는 것이 나와 모두의 생명을 위하는 것이라면, 기도하고 간구하고 청하십시오. 그것을 듣고 동행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분이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고향 나자렛 고향을 떠나 새로운 자리에 오셔서, 사람들을 살리고 생명을 전할 일을 하신 주님, 고뇌의 기도와 함께 떠나오시며 당신의 구원과 생명을 기쁜 소식으로 전했습니다.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청함의 궁극적 그 자리는 생명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마태 7,7-8

 

  오늘 구하고 찾고 기도하고 두드리는 날 되기를 바랍니다. 희망과 바람이 구체적인 사람과 대상에게, 찾고 두드리고 간청하는 날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고뇌의 기도, 용기있는 결단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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