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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생명가 사랑을(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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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48회 작성일 20-07-16 09:46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크지 않은 아스팔트. 차가 종종 다니는 도로입니다. 언덕에서 나온 지렁이가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습니다. 지렁이는 몸의 주름을 줄였다 폈다 하여, 움직입니다. 날씨가 습해서 답답하면  지렁이는 땅속에서 습한 기운을 크게 감지하는 것 같습니다 몸을 쾌적하게 하기 위해서 땅으로 나옵니다. 땅 특히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도로로 나오면, 상대적 연체류나 다른 벌레와 달리 도로로 나오면 생존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스팔트를 기는 지렁이의 운명. 그것이 살아나는 데 개입을 하면 살 수 있고, 그대로 놔두면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풀줄기를 가져다가 지렁이를 들어서 숲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그래도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용서는 그의 죄를 없애 주는 것. 탕감하는 것입니다. 내게 빚진 채무자의 빚을 되갚지 않아도 탕감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내게 빚진 것이 없다고 선언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신적인 결정이기도 합니다. 내가 용서하는 데,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 그야말로 인간이 용서하지만, 곧 하느님이 용서하시는 신적 결정입니다. 인간도 하느님의 신적 결정에 동참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용서'에서 가능합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결정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가 얼마나 경이와 찬탄의 결정이겠습니까?

  실상 용서는 살리는 것입니다. 지렁이가 아스팔트에서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은 것처럼, 용서하는 이는 용서받아야 하는 그를 살리는 '생명의 길'입니다.


  용서에서 성령의 역사에 참가합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흭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요한 20,22


  그렇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죄 사함에 동참하고, 그 결정에 내가 합일하는 것입니다.

  그도 살고 나도 살려면 용서해야 합니다. 성령의 마음과 그 뜻에 맡겨드려야 합니다.

  세상살이에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인내하기도, 견뎌내기도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절망과 좌절을 안기는 일도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와 더 나아가 증오가 생기는 일도 있습니다.

  그의 악행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그 악행, 그보다 더 가격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용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경로로 용서해야 하지만, 용서할  수 없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 용서를 내가 개입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느님께. 하느님의 성령께 그를 그 대상을 믿음으로 맡기기 바랍니다.

 

  용서할 수 없을 때,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온전히 맡겨리는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과 내어맡김이 필요합니다.


  용서는 나를 살리고 그를 살리는 일입니다. 죽은 생명을 살립니다. 그래서 용서의 길에서, 그 길을 선택하여 걸어갑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는 사랑입니다. 상대를 위한 희생과 자비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그를 살립니다. 하느님께서 나도 살리시고, 그도 살리십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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