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진리, 다름의 길(2020.07.17)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41회 작성일 20-07-17 09:43본문
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삶에는 서로 다른, 다름이 있습니다.
세상에 얼굴이 같은 이가 없습니다. 쌍둥이라도 다름이 있습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릅니다. 같다고 느끼더라도 곧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서로 다릅니다. 성품도 다릅니다. 서로 다르지만 만나고 대화하고 연대하고 살아갑니다.
모두가 똑같지 않습니다. 서로 다릅니다. 서로 상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힘과 권리가 있는 이가 상대를 누를 수 있고, 물리칠수 있으며,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자연을 보면 모든 것이 서로 다르고 상이하지만, 서로 공존하고 서로 더불어 살아갑니다. 힘이있고 지식이 있고 영예가 있는 이들은 이와 반대로 힘이 없고 지식이나 앎이 부족하다고 여기면 상대를 얕보고 마음대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과 행위는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 아니라, 상대의 권리와 존엄성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다름을 인정하는 덕과, 그 다름에서 사랑과 평화가 싹을 티울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당시 율법과 성전 제사와 그 지식인들과의 가르침에서 상당 부분 달랐습니다. 사제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유다의 유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313항의 명령과 313항의 금령이 있었으니까요. 626의 율법의 조항을 지키느라 그들도,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고 고달펐겠습니까? 백성들이 600개 이상의 율법을 고지곧대로 어떻게 지킬 수 있었을까요? 결국 이 600 개 이상의 조항을 지키지 못하면 율법 준수 못함의 비난을 받아야 했고, 당사자는 내 외적으로 율법에 의해 단정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율법의 안식일법은 유다 율법에서 절대적인 법이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라' 십계명에도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날이었습니다. 탈출기에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사형이었습니다(탈출 31,14). 창세기에서도 하느님께서 7일째 쉬시었습니다. 그리고 복을 내려 주신 날이었습니다.
그
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이 등, 병을 고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마르 2,27). 굶주려도 배고픔에 허덕여도, 밀이삭 조차도 따먹을 수 없는 하느님의 시간, 하느님을 위한 행위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배고파하는 제자들이 밀이삭을 따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참 제사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느님의 인간의 사랑과 그 말씀의 법을 전하는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고 선언했습니다. 참 예수님은 달라도 크게 달랐습니다. 절대적 하느님 안식일법을 그분 자신의 법이라 하시니 율법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얼마나 역모를 당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는 사제들, 율법학자들, 바리사이인들의 율법의 정신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데 달랐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법으로 그 율법을 해석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인 우리들도 예수님의 '다름'을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이나 율법만을 강조하는 일부 종교인들의 생각과 달라야 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신 것은 이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곧 율법의 희생제사가 '자비'라는 선택과 결정에서 깨닫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님의 참 앎과 진리의 말씀을 식별할 줄 알아야 하며, 그 법과 진리가 사랑과 자비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금
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주님의 길 진리 생명은, 율법의 정신, 그 원천, 사랑과 자비에서 유래합니다. 사랑과 자비는 생명의 길이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살아나고 건강해 집니다. 그 길 진리 생명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재을 신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