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화해부터(2020.01.1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908회 작성일 20-01-16 10:04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한다는 것은 먼저 화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나 우리가, 모두가 화해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서는 화해부터 시작합니다. 화해 없이 용서할 수 없으니까요. 나와 너, 우리와 모두의 스스로의 화해에서 용서가 시작됩니다.
누가 나를 공격하거나 가격했을 때, 충격을 받습니다. 이때 고통이 오고 아픔이 올 때 그 고통의 괴로움이 상대에게 자연적으로 반발이 되고, 미움이 생기거나, 더 나아가서는 나도 상대를 공격하고 피해를 줄 마음을 갖게 됩니다.
만일 상대가 힘이 세거나 위치가 높다거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면 그 반발을 인내하는 것. 그것이 더욱 고통스럽고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 힘있는 이, 권력을 갖고 있는 이가 스스로 자신을 정도(正道)로 화해하지 않으면 궁극적 용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용서는 내가 화해를 시작하고, 상대도 화해가 시작될 때, 그 화해가 서로간에 이루어질 때 진정한 용서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화해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화해의 시도도 중요합니다. 궁극적 화해인 용서는 쌍방의 진정한 화해에서 이루어집니다.
네 가지의 화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과의 화해입니다. 죄와 잘못을 한 나 자신이 스스로 사랑과 정의에 바탕에서 풀어가는 것입니다.
둘깨는 너, 이웃과의 화해입니다. 상대와의 화해는 공동체의 화해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이루는 화해여야 정의와 평화의 가정, 사회, 나라가 됩니다.
셋째, 자연과의 화해입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자연을 마구 훼손합니다. 과다하게 오염물질을 배출합니다. 하늘, 산, 평야, 바다를 오염시고 생물들에게까지 죽음을 강요합니다. 자연 생물과도 화해해야 합니다.
넷째, 하느님과의 화해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고, 물신을 숭배합니다. 사람들의 삶의 의식 속에 돈, 황금이 최고의 우상. 신입니다. 이런 물신 사상은 각가지 자본적 생활 속에 깊이 와 자리잡고 있습니다.
용서는 생태적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 가치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용서한다면, 단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한다는 것만으로 용서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단지 종교생활에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서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과 자비, 선과 정의, 생명과 평화에 함께 부합하여 살 때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물질적 부는 함께 나눔으로 용서가 이루어지고, 소비재를 마구 쓰고 버리는 것을 극복하면서 자연과의 용서가 이루집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모시고 기도하는 가운데 용서가 이루집니다. 그리고 나의 진리와 선의 바탕에서 회개가 이루어질 때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용서는 나, 이웃, 자연, 하느님과의 화해가 함께 이루어질 때 이루어집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는 화해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자신과 화해합니다. 너 이웃과 화해합니다. 자연를 살리는, 자연과 화해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화해합니다. 궁극적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이재을 신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