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들보와 티를 아는(20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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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9회 작성일 25-04-10 09:41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들보가 있다. 그리고 티도 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들보가 있을 수 있고, 또 티들이 많이 보인다. 나의 들보는 언제부터 유래했는가? 그 유래로 부터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그 들보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지? 생각합니다. 사실 들보는 나의 오래된 습관으로, 이미 내게 그런 성품 같은 것으로 자리를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묶고 조이고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발목을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 이를 어찌 어찌 할 수 없어!" "들보이긴 하지만, 그것을 떨어뜨리거나 치워벌리 수 는 없어!"
들보를 알면서도 그것을 이찌할 수 없거나, 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들의 들보는 이집트에서 비록 노예생활은 하고 있지만, 풍부한 양식과 물, 고기와 채소를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이집트의 파라오의 권세에서 억압을 받은 것 뿐입니다. 노예 생활이기도 하였습니다. 노예 생활인 것은 맞지만, 풍족하게 먹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와서 파라오의 억압을 받지 않고 자유를 얻었을 때의 그들의 해방과 자유, 환호와 환희를 이루말할 수 없이 크고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광야로 들어와서 양식과 물이 없고, 사람 뿐 아니라 자기의 재산인 가축마저도 굶주리고 목말라 죽게 되자, 그들은 먹고 마심의 풍요한 적을 생각하여 아우성을 치고 주님을 반역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노예 생활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그렇게 했으면서도, 굶주림이 닥치자 이집트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들의 민족적 들보를 다시 선택하려고 하였습니다.
들보는 무엇일까요? 아직 그 들보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 그 자유를 얻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들보. 그 바위는 예전에 용암이 흘렀던 것이고, 그것이 굳어진 상태에서 큰 돌이 되고 들보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역사에서도 이런 뜨거운 불물이 흘렀던 때가 있었고, 그것이 식은 가운데 우리에게 자리잡고 들보가 된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이 들보를 들어내고 부수기가 어려울 수 있어도,하느님 그분께서, 그리고 그분이 이 들보를 들어내고 부수어주실 수 있습니다.
용서. 그것은 우리의 들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들보를 보고 기도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사실 들보는 내가 그것을 들여놓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나의 역사와 그 여정 안에서 내가 바라지도 않았지만, 내게 들어 왔던 것. 그것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대들보 삼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들보는 들어내어져야 하는 것. 그것이 산산히 부수어져서 흘러가야 하는 것. 그래야 나의 행복이 구원이 기쁨이 환희가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바로 설수 있고, 하느님의 구원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용서는 나와 그의 들보를 바라보고 기도하고 치우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도 용서의 근본의 길을 가는 일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나의 들보를 늘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나의 선의와 성실과 참됨으로 그 들보를 부수고 그것을 흘려 내보냅니다. 그런 노력과 함께 주님의 선하심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께서 개입하시고 그분이 이루시도록 해 드립니다.
주님, 저의 들보를 위해서 기도하고 털어버리게 하소서. 절제와 비움과 선을 통해서 그것에서 자유롭고 믿음과 용기로서 실천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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