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부유함이 되게(2025.08.19)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60회 작성일 25-08-19 10:04본문
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매일 매 순간 자유롭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유로이 흐르고 나아가 바다를 이루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장애물을 만나게 되고 벽을 만나면 힘들어 합니다. 요즘 여러분에게 장애는 무엇이고,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모시는 사람은 어떤 장애나 장애물도 넘어갈 수 있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장애를 이기고 장애물을 넘어갈 수 있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장 작은 알갱이를 소중히 생각하고 기꺼이 작은 알갱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큰 것과 큰 돌들은 장애를 넘어갈 수 없지만 가장 작은 물 알갱이는 가장 좁은 틈이 있어도 새어 나갑니다. 그래서 시내와 강을 바다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것, 적은 것을 수용합니다. 낮은 것, 비천한 것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함을 수용하고 그 가난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낮은 것. 비천한 것. 곧 가난을 직면해도 그것과 벗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고 크고 완전한 분이 가장 낮고 가장 작고 가장 비천하게 되셨습니다. 스스로 그것을 수용하시고 그렇게 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난하고 비천하고 낮은 이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富益富貧益貧)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유한 것은 더 부유하게 되고, 빈곤한 것은 더 빈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진 이는 더 갖게 되고 갖지 못한 이는 가진 것 마저 못 갖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부가 그렇지는 않지만, 현 사회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입니다. 가진 이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많이 더 크게 그것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쉼과 나눔이 없습니다. 낮은 것, 비천한 것, 없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부와 소유, 영예와 힘과 건강 만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머무실 곳이, 그 자리가 있는가? 먹고 누리고 즐길 것이 수두룩한데 가난한 이, 보잘 것 없는 이, 낮은 이, 비천한 이를 바라볼 눈이 여유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완전해 질 것이다. 하늘에 보물을 차지할 것이다. 라는 말이 그에게 허락될 수가 있을까?(마태 19,21). 가난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 가난을 영성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완전해지는 일이며,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머문다는 것은 가난한 이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 가장 가난하게 죽으신 그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가난의 길에서 완전함이 있습니다. 가난함에서 보물이 있습니다. 가난함에서 주님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말을 들을 때, 부익빈, 빈익부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부유함이 가난한 것이고, 오히려 가난이 부유함이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합니다. 부익빈을 수용한다면, 우리는 빈익부가 우리의 길임을 알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과 공존, 존엄과 평등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복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유가 왜 가난함인가? 왜 가난함이 부유함인가?를 생각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는 이는, 이 가난의 영성을 이해하고 묵상하고 실제로 실천합니다.
화요일은 말씀의 날. 말씀에 머무릅니다. 말씀의 가난함. 그 영성을 따랍니다. 그 가난과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진리를 깨닫습니다. 진리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그 말씀과 가난에서 행복합니다.
주님, 오늘도 가난함에서 말씀의 원천을 알게 하소서. 가난함을 택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주님의 복음을 살게 하소서. 그 행복을 우리에게 주소서.
이재을 신부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