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함, 주님을 앎을(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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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17회 작성일 23-02-20 11:37본문
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열릴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마태 7,7-8
어미가 새끼의 울음 소리를 듣지 못하면 새끼가 살아나기가 어렵습니다.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어린 아이가 뒤에서 부르는 부모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위험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목자가 부르고 양은 따라갑니다. 목자도 양의 소리를 알아듣고 양도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습니다. 서로 서로 알아들을 때, 그 방향으로 향할 수 있고 만날 수 있으며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영원한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사랑의 주님께서 또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 지혜를 주시고, 그들은 당신의 사랑으로 당신을 알아봅니다. 당신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이 되고, 우리의 사랑의 원의에 따라 그 지혜 를 더해 주십니다.
안다는 것. 그 앎과 모른다는 것. 그 무지의 간격이 끝과 끝입니다. 이쪽과 저쪽 서로 양 끝에 서 있습니다. 앎에서 무지로 갈 수 없고, 무지에서 앎으로 갈 수 없습니다. 앎은 생명이지만, 무지는 죽음입니다.
이스라엘 유지들. 원로들과 사제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모세 오경을 줄줄 외우고 조상들의 법과 율법에 따라 그 규칙에 따라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생명의 말씀을 수용하지 못했으며, 안식일 등 율법을 그르친다는 이유로 그분을 노려보고 모의하였고, 급기야는 그분을 죽이는 데 찬동하였습니다. 율법의 지식은 있으나, 앎이 없었습니다. 지식이 있다고 하였으나 무지한 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의 '앎'을 알고, 앎이 없는 그 무지를 성찰의, 바라봄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내가 하느님을 안다, 교회 신심과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나, 주님의 진리의 앎이 없거나 함량의 미달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앎의 결핍이 있으면, 주님의 길을 그르칠 수 있으며, 그릇된 신심 이 되고, 공동체와 형제들을 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앎을 위해서 참된 것에 대한 들음, 그 경청의 덕이 있는 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참됨은 경청하며 검손하는 것입니다. 참됨의 경청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것이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경청하고 겸손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곧 경청하고 겸손하는 이유는 인간적 욕망과 영예가 아니라, 생명을 위해서 하는 일이고, 자신의 생명은 물론 다른 형제들의 생명과 구원의 길을 위함입니다. 주님 말씀을 듣고 사는 것은 구원의 창대함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구원은 '십자가의 신비'에서 나옵니다. 진리를 위해서, 매일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도록 노력합니다. 그 진리에서 구원이 나옵니다. 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하느님 영원한 지혜의 말씀. 그 앎을 주시도록 청합니다. 그 앎에서 새로워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고,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 당신께 청합니다. 당신의 진리. 그 말씀을 깊이 깨닫게 하소서. 오늘 당신 앞에서 기도하고, 당신 앞에 겸손되이 무릎꿇고 십자가의 길을 깊이 성찰하게 하소서. 그 진리로서 나와 그리고 이웃과 함께 진리의 벗이 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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