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신비로움(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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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87회 작성일 23-01-18 09:18본문
수요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살아있음으로 시작하고 뜻을 생각하고 선과 호의, 만남과 걸어감 에 감사합니다. 하루의 지나온 거리와 시간, 함께 만남과 대화, 위로와 격려, 맺음과 희망 모두가 감사입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편한 이의 만남에 감사합니다. 그런 대화가 오고감도 그 마음을 가지려고 애씁니다. 거북스런 만남도 설령, 웬수 가 오더라도 그런 마음을 감사합니다. 실상 감사는 그것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만남이었다 하여도, 들여다 보면 보통이 넘어 특별하고 그것은 환희의 감사 입니다. 감사는 그 안에 특별함이 있고 신비가 있습니다. 신비는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내가 오늘도 살아있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또한 시간과 자리와 거리가 있으며 만남과 관계가 있고, 또한 쉽지 는 않을 수 있으나, 그 과제에 해결할 일들에, 그것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것 또한 특별함과 신비가 있고, 또 아름다 운 이룸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가 이 자리에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움직이고 있고 생각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 새로이 만남과 그들과 함께 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기도와 함께 선의와 호의로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와 만남과 내용에서 이루어질 일에 감사합니다. 만남과 관계에서 올 길과 희망에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일과 과제, 만남과 관계, 그것을 해야 할 나는, 감사함보다는 부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남과 관계 그리고 걸어감이 어렵습니다. 어그러질 것을 우려할 수 있습니다. "어렵구나, 해야 되나? 그렇게 해서 꼭 잘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또는 부담감을 넘어, 어려움을 스스로 합리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부담감과 어려움이 인간적 부끄러운 자존심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나를 회피하고 더 나아가 그 대상과 만남과의 관계를 멀리하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은 나를 호의적으로 선의로 바라보고 함께 하려는 마음이 있음에도 나는 나 스스로를 묶고 가던 길을 틀어버리는, 상대방이 나를 오해하게 하는, '삶의 미숙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넘으십시오."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그 시간과 자리에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만남과 관계에 감사합니다. 어제 어려웠을지라고 오늘 새로우 며 새 만남과 희망의 만남으로 감사합니다. 감사를 통해서 새롭게 선의와 호의를 갖습니다. 그래야 나와 그를 항시 새롭게 보며 새롭게 선과 아름다움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감사의 특별함을 외면하고 못본체 하지 않기를 바랍 니다. 바로 감사하고 감사로 만나고 시행하여 새 희망 기쁨을 갖기 바랍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걸어온 과거와 주님의 제자들을 박해했던 매몰찼던 박해자의 시절, 예수님께 돌아와서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모시고, 또한 예수님을 위해서 온갖 어려운 환경과 조건을 넘어서, 온갖 악조건을 넘어서 감사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소아시아 유럽, 일리리쿰까지 34년 이상을 복음을 전하고 순교에 이르면서 까지..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감사'을 알았습니다. 그 감사는 하느님의 성령의 역사 안에서 그 은총의 선물로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수요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감사에 그 은총의 신비가 있음을 믿습니다. 감사에서 그 신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 제가 시작하는 오늘에 감사합니다. 생각하고 꾸미고 걸어갈 수 있음에, 만남과 관계와 그 거룩한 일에 감사합 니다. 당신이 이루시는 모든 길에 감사합니다.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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