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그 살아있음(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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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78회 작성일 23-01-05 09:28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아카시아 큰 나무에 까치집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해 것이고, 또 하나는 두 해 전 것입니다. 지난해 지은 둥지는 두 까치가 이 겨울에도 머물고 있고, 두 해 전의 둥지는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해 새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서 내 보냈습니다. 그러나 올 해는 그들이 새 둥지를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지난 해 만든 둥지 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얼마 후에는 허술해 지고 쓸모가 없게 될 것입니다. 생물들도 그렇지만 사람도 새롭습니다. 그래야 삶이 됩니다.
우리는 만나고 대화하고 또 다가가며 관계를 맺습니다. 그것이 살아있음입니다. 겨우내 나무가 잎이 떨어지고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것 같은 나무도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 한 겨울에도 그 나무가 자랐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겨울에 나무가 살아있고 자랍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즐겁고 재밌고 기쁠 때도 살아있는 것이지만, 고통과 절망, 어려움과 험함에서도 우리는 살고 생명이 있습니다. 나이테 처럼 겨울에 작고 좁아보여도 나무의 생이고, 우리의 고통과 괴롬, 좌절과 절망에서도 그것도 나의 생이며 나의 삶입니다.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환희의 생활은 생명의 환호와 향연의 시간입니다. 그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고통과 괴롬, 시련과 곤난의 생활은 곤욕의 시간입니다. 감사할 수 없고 어찌 살아야 할 지를 모르지만 그 시간과 그 세월도 내 시간, 세월입니다. 기꺼이 그것도 받아들이고 걸어가야 합니다.
어려운 조건과 환경에서, 수용하거나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조롱당하고 그릇된 공격을 받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용서하거나, 사랑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매우 추운 겨울에 살아가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것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인생의 주요한 부분이며 생명의 자리입니다. 나무가 그 혹독한 강추위에서도 살아남듯, 우리도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기 어려울 때, 사랑하는 것. 용서하기 어려울 때 용서하는 것. 기쁨을 잃을 때 기쁨을 찾고,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나서고 그 용기를 가질 때,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삶의 여정, 생명의 여정이 됩니다.
어떤 때,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과 사건에서 정말 '용서'와 무관한 것이 있습니다. 용서가 1%도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1% 안되는 것에 용서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용서에 다가가고 그 곳에 마주하고, 결국 그 용서를 내 집에, 내 마음안에 머물게 하는 것은 나에게 환호 와 환희를 온전히 채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용서가 되지 않을 때, 용서와 치워버리고 던져 버리고 싶을 때, 그 용서가 결국은 내게 환희와 찬미의 향연을 마련한 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설령 오늘 용서하고 내일 용서할 수 없다하더라도, 오늘은 용서의 마음으로 시작하고 그 용서를 향해서 걸어가십시오. 그 용서의 희망에 대한 발걸음은 가볍고 모든 길을 여는 것이고 끝내는 내게 축복과 그 은혜를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다른 이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신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고 하였습니다(마태 6,11)
주님, 오늘 용서의 마음으로 시작하게 하소서. 사랑의 마음으로 시작하게 하소서. 용서와 사랑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가게 하소서. 용기를 갖고 용서에 나아가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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