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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허물을 보라(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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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98회 작성일 23-01-12 10:13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하면 용서의 길이 열리고 용서하지 못하면 용서의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허물을 용서하면, 허물을 용서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며,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 6,14-15

 

 예수님께서도 용서를 말씀하실 때, '허물'을 말씀하십니다. 허물, 허물이 있는가? 허물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생각합니다. 누구든 허물이 있습니다. 실상 허물이 겉으로 드러나고 계속되는 허물이 악습이 되고, 그것이 잘못과 죄의 

원인이 됩니다.  허물이 무엇인가? 잘 고쳐지지 않는 허물이 무엇인가? 나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이 지적하기도 하고 또

우습게 보기도 하고 그런 것을 조롱도 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를 대할 때는 편안하게 대하고 잘 대해 주고 수긍과 수락을 하면서, 내게는 비꼬거나 우습게 

보거나 나를 공격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실상 내가 그에게 그렇게 부담을 주고 부끄럽게 하거나 잘못한 것도 아닌 

것 같은 데, 그는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나를 하찮게 보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불편하고 자존심도 상할 수 있습

니다. 그래서 참다가 나도 그의 잘못에 대해서 반발하거나 나도 힘을 가할 때가 있습니다.

 

  '허물' 그것이 나의 허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허물'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나를 우습게 여기고 부담을 

주고 부끄럽게 하고 나를 공격하는 것. 그것이 나의 허물일 수 있지만, 꼭 그것이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곧 그가 지녀온, 오랫동안, 아픔과 상처 그리고 그 자신과 가족과 그가 만난 공동체의 허물일 수 있습니다. 

곧 자기가 과거부터 지녀온, 곧 자신과 가족과 과거의 집들에서 받은 허물을, 지금 내게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부터 허물의 원인과 요인이 덮어지고 감추어지고 있다가 비로소 나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허물입니다. 

 

  그가 내게 보이는 허물, 나에게 대한 지적과 조롱과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가 지적을 받았고 조롱을 받았으며

자존감을 상실하게 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줄곧 진행되어 왔으며, 그것이 회복되고 치유되지 못한 때, 자랐고 

지위와 명예를 얻었으며, 그리고 가르치는 부모, 교사가 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부모이고 선생이고 지도자이고 으뜸이어도 그는 아직 그 허물이 치유되지 않았고 바뀌지 않았고, 급기야는 나를

만나고 공동체를 만나면서 힘과 위력으로 행사되어 나타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가 그것이 허물인지도, 상대에게 부담과 자존적 가치를 상실하게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줄곧 그렇게 행사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그의 허물을 해소하거나 해결할 수 없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그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물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허물'이라고 인지되고 인식되어야 그 허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 허물을 인지

하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과거 오랜 세월 동안도 그 허물의 영역에서 자신도 가족도 집도 그런 환경과 조건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껏 줄곧 허물로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 그 허물이 고쳐지기 위해서는 '허물'을 고쳤거나 허물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이  그들 도와줄 수 있고, 허물을 고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허물이 있는 지, 허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의 허물을 어떻게 바꾸고 개선할 수 있는가? 

어찌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세상살이에서 해결하기 난망하고,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나로 부터 시작하는 가엾은 마음, 측은지심입니다. 일생동안 

가지고 있는 그의 허물을 바라보면서 그도 가족도 집안도 해결할 수 없었던 그 그늘, 암울한 과거의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의 허물이기보다, 그 부모, 그 가문의 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잘못과 죄라기 보다, 과거의 굴절된 선배들

의 허물임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가엾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 허물을 개선할 수 있고, 그 허물을 고쳐갈 수 있고, 그를 잘 되게 끝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측은지심의 자비, 

줄곧 지니는 사랑의 마음 만이 그의 허물을 개선하고 고치고 더욱이 용서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허물이 어디서 부터 유래하는 지 보고 있습니까? 그 사람도 허물의 울타리에서 허덕이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까?

그 허물이 그를 옥죄고 묶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과거의 부모 형제 그 가문의 굴절된 역사임을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허물을 헤아리면서 기도를 시작하기 바랍니다. 그가 과거부터 받았던 그 어려움과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은 가를 알아채기 바랍니다. 그 아픔과 고통의 그늘 속에서 얼마나 슬픔과 울음이 있었는지를 알기를 바랍니다. 

 

   허물. 그것이 허물이고 그가 지신 강권과 힘으로, 어떤 때는 폭력으로 나타나는 결점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를 배척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입고, 그가 앞으로 걸어갈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그것이 용서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허물. 그것을 볼 줄 아는 지식을 청합니다. 그 허물에서 그의 아픔과 울음을 볼 것을 구하기 

바랍니다. 그의 허물에서 미래의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기 바랍니다. 그의 허물에서 벗어나 그가 환희와 환호가 되도록 

도와주기 바랍니다. 그것이 용서입니다.

 

주님, 허물을 볼 때 그것을 탓하기 보다 그것에 고마워하게 하소서. 허물에 서서 그의 위로와 기쁨을 보게 하소서. 

허물에서 나와 그의 환희와 찬미를 보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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