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회개가 바탕을 이루고(20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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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64회 작성일 22-12-22 14:04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나를 곤경에 빠뜨리고 고통과 고난을 겪게하는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절망에 빠뜨리고 배신한 사 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조롱하고 비웃고 뒤통수를 치는 사람에게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선의와 호의를 악의과 거짓으로 바꾸는 그를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를 용서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정작 내가 받은 고통과 곤경에 있을 때, 실상 용서하기가 어렵 습니다. 어떤 사람이 누차 똑같은 죄를 짓고 같은 의롭지 못한 행위를 거듭할 때, 그것은 용서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불의한 행위가 방향을 바꾸고 회개한 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에는 그 사안마다 다르고 과정이 필요합니다. 쉽게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시간을 두고 그의 회개와 개선을 통해서 용서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용서에 대해서 말합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헤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루카 17,4
루카 복음 사가는 '용서'에 대한 방법을 말합니다. 우선, 형제가 죄를 지으면 꾸짖어야 한다. 둘째, 회개하면 용서하라. 셋째, 일곱번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용서해 주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용서에서 중요한 것은 '회개'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회개를 위해서는 '꾸짖음'도 중요하며 그것이 용서의 부분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한편 용서는 죄를 짓고 용서를 계속 청한다면 그것을 받아주는 수용도 용서의 부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용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그 회개에 대한 것 없이 용서가 불가능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내가 그의 회개없이 용서해 준다하여도, 그가 궁극적 용서 받음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회개를 바라십니다. 회개하는 이를 용서하시고 회개에서 그분은 축제를 베푸십니다.
어떤 사람이 일상에서 나에게 불의하고 의롭지 않음으로 곤경과 고통에 빠뜨릴 때, 물론 내가 받은 고통과 그 충격이 이루말할 수 없고, 그를 바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그를 수용하거나 용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의 선의와 호의를 악의와 악행으로 받아들이는 거짓과 그릇됨의 내면의 분노입니다. 내면의 분노가 표출되지 않으면,나는 화를 입으려 고통속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상 그의 거짓과 그릇됨의 내면의 분노의 표출은 나의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닙니다. 이것에 죄의식을 느끼거나 그것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누구로 부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격을 당하면 그 몸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처럼,요 내가 그 충격으로 괴로움과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그 아픔과 괴로움을 시간이 지나고 극복되어 가는 것이고, 그러고 내가 고침을 받고 건강해 지면 평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용서는 그때 이루어집니다.
괴롭거나 고통중에 있을 때는 그에 대해서 용서한다. 용서하라. 이런 말이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고통 때문에 화해와 용서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고침과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서 만족과 시간과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가 쉽고 또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위해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한 나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회개는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도 해야 하며 함께 회개의 마음이 균형을 이룰 때, 궁극적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주님, 오늘 용서로 시작합니다. 용서가 그와 내가 균형을 이루도록 이끄소서. 회개를 통해서 용서를 배우게 하소서. 회개를 통해서 서로 주님 구원의 길로 나가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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