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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목요일, 한적함과 쉼에서(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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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637회 작성일 22-10-27 09:33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쉼은 마음의 쉼, 생각의 쉼, 정신의 쉼, 육체의 쉼 전체가 포함됩니다.

 

피정은 몸과 마음을 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시간과 자리도 피합니다. 만남과 대화도 멀리 둡니다. 일과 활동, 가치

와 판단 마저도 유보합니다. 쉼은 영과 육을 쉬도록 합니다. 시간과 자리, 만남과 대화, 사건과 일 마저도 멀리 두는 

것 흘려버리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영육의 쉼에서 자연히 흘러드는 신선한 마음과 위로와 격려를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육체적인 쉼이 첫째입니다. 

육체를 쉬지 않으면, 영적인 쉼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물리적, 육체적 쉼을 선택해야 합니다. 

아니 그것은 용기고 도전입니다. 쉼도 도전을 해야 합니다. 오늘 도전하십시오. 

 

무조건 떠나는 것. 아무 생각하지 않고 떠나는 것도 쉼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과제나 주제를 갖지 않고 떠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 떠남 안에 하느님의 창조 섭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분께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쉼은 궁극적 만남이요 대화입니다. 쉼에서 그 은총의 섭리를 만납니다.

 

쉰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스스로 축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주시고 그 아드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 다른 사람, 형제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바로 '나'를 위해서 오시어 그렇게 하셨습니다. 타인은 타인대로 그 자체로 사랑하지만, 주님께서 나도 나로서, 

극진히 사랑해 주십니다.

 

내가 고통과 괴롬, 절망과 죽음을 당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렇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거나, 용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나의 선함과 참됨, 그 아름다움이 할큄을 당하고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내 상처가 심하게 할큄 속에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 할큄이 아픔을 

멎을 때 까지 상대를 수용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용서의 차원이 아니라, 나의 상처 아물기가 먼저 먼저이기 때문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용서하지 못한다고. 나 스스로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나의 아픔과 상처가 멎으면 자연히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먼저 쉼을 주어야 합니다. 나의 마음과 몸과, 영과 심령을 쉬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 쉼을 통해서 내가 회복되고 치유되고 온전해 지기 때문입니다.

 

용서 이전에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쉼을 선택하십시오. 용서가 먼저라는 부담을 털어버리십시오. 몸과 마음의 쉼과 

시간과 자리의 쉼에서 그 현장과 자리와 만남과 대화에서 멀리 떨어져서, 스스로 잊고 흘려버리는 그 쉼을 먼저 

행하십시오. 그것이 궁극적 풀어감과 화해에 지름길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용서의 성령의 은총을 입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에게 쉼을 줍니다. 그 쉼에 도전합니다. 

기꺼이 다른 것을 멀리 물러가게 하고, 쉼의 자리와 그 시간을 갖습니다.

 

주님, 오늘도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움으로 살게 하소서. 그것이 존중받고 사랑받게 하소서. 

나의 이것의 할큄에서 아물고 회복되게 하소서. 그 안에서 당신의 은총에서 해결하고 풀어가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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