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앎으로(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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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25회 작성일 22-07-13 10:18본문
수요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시작하면서 무엇을 보았나요? 무엇을 누구를 만났지요? 바라봄과 만남, 나눔과 이야기가 좋은 것. 그것이 기쁨이자 감사합니다.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만남과 대화, 그리고 즐거움과 기쁨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는 앎에서 시작합니다. 앎이 없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앎이라는 깨달음이 없으면 감사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보는 앎이 있어야 하고 듣은 앎이 있어야 합니다.
만남의 앎이 있어야 하고, 만남의 즐거움의 앎을 알아야 감사합니다.
더욱이 기쁨에 기쁨의 앎이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알고 있다면, 도움의 사람을 알고 있다면, 나눔의 사람을 알고 있다면, 나와 복됨을 나누는 이를 알고 있다면 그는 감사를 알고 감사를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이가 나를 알고 나의 길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걸어가는 것을 격려하고 도와 줍니다. 그런다면 감사의 나, 나는 감사의 덕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알기에 감사했습니다. 마찬가지. 그들도 주님을 알았기에 감사했습니다. 알고 있음은 한마디로 '감사'입니다. 알지 못하면 제아무리 좋은 이라도, 좋은 것이라도, 감사와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좋은 일과 설령 좋은 결실을 얻는다 해도 앎과 길을 알지 못하면 감사는 멀리 떠나 있습니다.
감사는 무지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것을 보아도 감사하는 이가 있고, 동일한 사람과 대상을 보아도 그 감사를 알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다. 감사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하물며 배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앎이 감사입니다. 앎이 없거나 알지 못하는 무지라면,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감사하지 못하고, 감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아직 앎을 모르는 사람, 아직까지는 무지의 사람입니다. 앎이란 단지 표면적인 상대를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앎이란 그 사람과 그 대상의 본질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겉모습은 별볼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아름답고 찬란합니다. 겉은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풍요롭고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속을 보는 것. 아는 것. 그 본질을 보고 기뻐하는 즐거움과 마음의 찬양입니다.
예수님은 약하고 허물이 많고 아직 갖추지 못하고 제대로 당신의 일을 수행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직 슬기롭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철부지 같은 제자들을 바라보며 감사하였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제자들의 속의 뜻을 보았고, 그 본질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마태 11,25
그 보는 것의 앎을 바라보십시오. 듣는 것의 그 앎을 들으십시오. 만남에서도 그 앎으로 만나십시오. 대화에서 속 진리 곧 앎으로만나고 본질을 만나십시오. 예수님은 아버지를 아는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을 찬미하였습니다. 당신은 감사하였습니다. 진리의 그 본질을 아셨습니다. 앎을 감사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수요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알고 있음에, 그 앎을 사랑하고 좋아하기에 감사합니다. 그 앎이 얼마나 좋고 아름답고 선한 일인지 알고 감사합니다. 그 앎을 찬미합니다.
주님, 제가 바라봄에서 앎을 갖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들음에서 그 앎에서 옳게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만남과 나눔과 도움에서 그 앎을 사랑하기에 감사합니다. 그 앎을 찬미하고 당신께 영광을 드립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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