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관용과 말씀(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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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18회 작성일 22-06-23 09:28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만남에서 대화합니다. 서로 말로 주고 받습니다. 만남에서만 말을 주고 받습니다. 만날 마음 조차 갖지 않으면 말을 주고 받을 수 없고 나눌 수 없습니다.
만남이 대화의 시작입니다. 만남을 가지려는 이는 벌써 말을 시작한 것입니다. 만남의 노력과 그 이어짐은 이미 대화가 이어진 것이고 자란 것입니다.
만남에서 필요한 것은 '관용'입니다. 상대의 말을 '허하라' 허용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말을 허용한다는 것. 그 말을 관용한다는 것은 상대의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말을 관용하는 이는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의 말의 허와 실, 부족과 결핍까지도 기꺼이 듣는 것을 말합니다. 말과 대화에서 이런 관용은 너를 알고 이해하며 동시에 나를 알고 나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을 나눔에서 '관용'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너와 그의 말에 대해서 '관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반하고, 반박하고 있습니까? 말과 대화에서 서로 '관용'합니다. 그때에 말을 듣고, 또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용서, 용서는 관용에서 부터 시작입니다. 상대의 말과 행위가 나와 다를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가치와 다를 수 있고, 나의 행함과 여정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말하고 또 행동합니다.
일과 여건과 상황이 다르고 맞지 않아서 서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고 불편하고 하물며 괘씸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무엇데 저런 행동을 하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야! 기분이 정말 안 좋아!"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그의 말과 행위에 대해서 반박하고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용'이라는 가치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에서 식별이 필요합니다.
그가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된 것. 그가 그런 말과 습관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을 헤아리고 수용하는 것. 고 받아주는 것. 그런 '관용'입니다.
루카 복음에서 용서는 어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라. 하였습니다(루카 17,4).
용서는 죄를 짓을 때 꾸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용서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관용의 차원에서 일곱번 죄짓고 일곱번 돌아와 회개하는 말과 모습을 보이면 또한 용서하는 관용의 가치가 있습니다.
용서가 관용을 포함한다는 것. 그것은 하느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비를 입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때 그 용서는 계속되고 이어집니다. 용서한다고 하면서 관용하지 않으면 용서가 단편적입니다.
용서는 관용을 벗으로 합니다. 관용이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비의 주님을 알고 깨달으며 자비로우신 주님을 알게 될 때, 그는 죄와 어둠에서 벗어나 선과 빛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용서는 관용을 벗 삼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를 하느님 앞으로 인도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죄를 지으면 꾸짖고 회개하면 용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되풀이 해서 회개하면 또 용서합니다. 그 관용이 있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니, 또한 자비로운 자 되게 하소서. 용서의 길 죄를 지을 때 꾸짖는 이도 되고 회개에서 기꺼이 용서하게 하소서. 회개가 되풀이 할 때 또한 그것을 용서하는 관용하는 자 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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