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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더함으로(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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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66회 작성일 22-06-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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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산딸기가 열매가 조그맣습니다. 이번 봄부터 여름이 지나기 까지 매우 가물었습니다. 요즘 조금 비가오지만, 식물이 

필요한 때에 비가 오지 않아서 이른 때 꽃을 피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의 열매가 크지 않습니다. 

제 때 비도, 햇빛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열매가 풍성합니다.

 

예전에 산에 가면 크게 열린 산딸기 열매를 먹고 나면 달고 싱그러워서 맛이 있었습니다. 

올 해는 쬐그맣고 열매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그만큼 나무들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열린 열매가 고맙습니다. 

적은 열매라도 내고 있으니까요.

 

사람의 자람도 때가 있습니다. 그 시기 세대에 맞추어 자람을 받아야 합니다. 그 시기 세대에 제대로 자람의 배려를 

받지 못하면 인생의 여정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미래의 인생길이 매우 힘든 길을 가야합니다. 

예전의 자람의 배려를 받지 못한 채, 부족하고 결핍된 지나온 여정에서, 앞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에 맞추어 비를 

햇빛을 받은 식물들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렇게 결실이거나 풍성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식물의 열매의 빈곤함을 보는 것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미래의 굴절된 인생길의 모습은 나나 그나 

우리나 모두가 아픔과 고통의 계곡일 수 있습니다.

 

용서한다는 것. 단지 그의 죄와 잘못을 사해주고, 삭쳐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미리, 그의 인생길을 건강하고 건실하게 

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돕는 것에 있습니다. 결과의 참담함보다 이리, 먼저 시작하고 노력하고 희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지 내 일이 아니야, 우리가 할 일이 아니지! 그런 일은 사회과 정부와, 그리고 교회가 하는 일이야!하는 것은 

바른 성숙한 가치와 거리가 있습니다. 스스로의 용서와 거리가 있습니다.

 

나의 자녀도 자녀이고, 그의 자녀도 자녀이고, 이웃의 자녀도, 그리고 오고가는 모든 이들도 우리의 자녀입니다.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자녀요 형제입니다. 나의 자녀와 가족을 돌보는 데 그동안 수고했다면 이제는 다른 자녀들과 

가족들을 돌보는 데도 신경을 쓰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더함, 더 나눔, 더 줌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통과 시련과 절망을 예방하고 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의 풍요로움입니다. 

 

처음부터 가정의 자녀로 자라난 행복한 이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어린,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사랑하지 못한, 함께 더불어 하지 못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무지와 

그 이기심을 탓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강 건너 불 보듯, 멀리 보고는 더 이상 나와 무관하다는 생각과 그 무지를 

탓하고 한편으로 그것을 부끄러워 할 수 있는 마음과 희망, 겸손의 덕이 필요합니다.

 

용서는 너, 상대의 죄와 잘못을 사해주고, 삭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더 나아가 미리 죄와 허물과 부끄러움의 

길도 들어서지 않도록 예방적으로 도와주는 것. 지속적으로 그 나눔을 해 가는 것. 

그러고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의 '더함'입니다. 그런 용서의 길을 살아갑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주님, 제가 용서가 단지 그의 죄와 잘못을 사해주고, 삭쳐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죄와 허물과 잘못 이전에 

더욱 올바르고 거룩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에 미리 노력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 길을 올곧게 걷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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