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눈높이를(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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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41회 작성일 22-04-19 10:03본문
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말씀이 철학적일 때도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할 때도 있습니다. 묵직하게도 가볍게도 할 수 있습니다. 강하게도 약하게도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눈높이가 있습니다. 높고 낮은, 강한 약한, 앎과 모름, 있음 없음에 따라 그 수위를 맞추어야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말씀을 전할 때, 강하고 굳고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전했습니다. 율법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이 나이, 지위, 신분, 환경, 조건에 상관없이 한 기준에서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맞추지 못하는 이들은 그것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조차도 그 율법 규정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나 일반 사람들은 얼마나 그 율법을 지키기가 어려웠을까요?
율법이. 그 말씀이 모두에게 단지 규정과 규칙이 되지 않고, 구원과 생명과 그리고 평화가 되어야 할 터인데, 단지 지켜야 하는 절대적 규범. 어쩔수 없이 지킬 수 없거나 그 조건이 되지 않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 그것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합니다. 율법이 신적인 법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영적인 상처가 크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었습니다. 중풍, 나병, 눈먼이, 손이 오그라든 이, 온갖 몸과 마음이 불편하고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그 간난함을 말씀으로 세우고 살리고 해방과 함께 자유를 주었습니다. 하물려 배고픈 이들에게 넉근히 먹을 것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풍요와 충만 그 자체였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와는 율법과 하느님 말씀 사이의 긴장으로 말미암아 갈등과 대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와의 그런 충돌적 요소는 오히려 그들의 굳고 찬 말씀의 경직성에 눈높이를 마련하는 또 다른 의미의 자유와 해방을 부여하였습니다.
아기에게 아기에 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성인이나 노인들에게 그에 걸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식견이 있고 지식이 있는 이들에게 그에 걸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씀은 그 사람의 가치와 마음과 삶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대상과 사람에 맞는 말씀의 눈높이가 그가 알게 하고 일어서게 하고 걸어가게 합니다. 마침내는 그도 눈높이에 맞는 사람이 되어 말씀을 바르게 전할 수 있습니다. 왜 그 사람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합니까? 왜 너는 말을 못알아듣냐? 몇번이고 말을 해야 알아듣냐?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 알아듣도록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무능을 탓해야 합니다. 수십번 말을 해도 못알아듣는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의 무지와 부끄러움을 탓해야 합니다. 나는 말을 잘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의 마음과 생각, 가치와 깨달음 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의 문제라기 보다 내가, 내가 무지하고 부족함을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 그 말씀은 대상, 그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어야 합니다. 눈높이를 맞추어야 그 말씀이 전달되고 흘러갑니다. 아직도 말씀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습니까? 기도하고 사랑하며, 경청하고 기다려주고, 또다시 노력하십시오.
하느님 말씀은 그에게, 그 사람에게, 그 대상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입니다. 예수님으 그렇게 하였습니다.
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주님, 제가 먼저 그의 눈높이에 다가가게 하소서. 그의 못 알아들음에 식별하게 하소서. 그와의 대화에서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을 먼저 듣고 그와 만나게 하소서. 늘 당신 말씀을 먼저 듣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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