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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청함. 기쁨의 사람을(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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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3-11-27 10:17

본문

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마태 7,7-8

 

  어떤 이는 일을 하지 않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회피하는 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마지 못해 하고 어떤 

이는 그 일을 단지 의무적으로 하는 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 일에 비난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일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며, 그 외에도 좋은 것을 성실하게 하는 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회피하거나 마지 못해 합니까? 단지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일에 

생명과 즐거움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할 때, 마지 못해했다거나 의무이기에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당신의 온 몸을 바치시며 그 일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일을 기쁨으로 찬양으로 

하셨습니다. 기쁨과 찬양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모든 만남은 살아있음으로, 그 생명으로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에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만남과 관계, 대화와 일 등이 살아있음을 전제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그것은 살리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의미는 소생에 있습니다. 살아남에 있습니다. 모두가 되살아남에 있습니다. 일상에서 소생이 아니라면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회복과 되살아남이 아니라면 그것이 어떻게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대화는 것, 관계를 맺는 것. 일과 설령 과제에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살아남, 소생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묶인 이들 풀어주고 눌린 이를 세워주고 아픈 이를 치유해 주며, 닫힌 이를 열어주었습니다. 그가 찬미하며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회피하는 이, 마지못해서 하는 이, 의무적으로 하는 것을 피하십시오. 이는 자신과 이웃의 소생과 그 사랑에서도 

굼뜰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 못해서 하거나 의무적으로 하는 이는 산술적이기도 합니다. 그는 살아남의 생명력의 

은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이, 그를 소생하게 하는 것은 회피하거나 마지 못해 하거나 의무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물에 빠져있거나, 나의 보배가 구렁에 빠져있다면 나만의 안위만 생각하고, 그것을 보고 못본체 하는 이가 어디 

있을까요? 

 

  기쁨의 예수님께 머물러야 합니다.예수님의 안에 머무르는 이에게 그분께서 그에게 머무십니다. 그분 안에 

머무르는 이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고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이. 바라는 것을 

무엇이든지 청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청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요한 15,7).

 

  청하는 것은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모두를 살게 함을 청합니다. 또한 청할 것은 다른 형제들도 또한, 곧 그들이 또한 

다른 형제들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청합니다. 내가 하느님 앞에서 자녀이듯이 그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고, 

내가 주님의 사도이듯이 그도 주님의 거룩한 사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너와 우리가 모두가 살아있음, 

되살아남을 위하여 주님께 청하고 노력합니다.

 

  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주님, 오늘 살아남. 되살아남을 위해서 걸어가게 하소서. 모두가 함께 소생하게 하소서. 소외되고 간난한 이가 

소생하게 하소서. 그 길을 위해서 성실한 자 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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