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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선함에서(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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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26회 작성일 19-04-2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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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산에 갖가지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 밑, 흙 위에서 나무들 사이의 빛을 따라 매우 작은 나무들도 자라고 있습니다. 자연의 신비, 놀라움을 보게 됩니다.


나무들을 보면 똑같은 모습의 나무가 없습니다. 종에 따라, 류에 따라, 크고 작음에 따라 모양새도 줄기의 형태도 다 다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단지 나무 숲으로 생갹할 수 있지만, 크고 작든 나무들 모두가 각각의 생의 역사가 있습니다. 한가지 더 분명한 것은 나무가 위로 뻗어 자라고 있지만, 자와 같기 보다는 울퉁불퉁하고 좌우로 휘어있거나, 하물며 눕는 것처럼 크는 나무도 있습니다.


인간이 말하기를 "너는 왜 똑바로 자라지 않고, 그렇게 휘게 자라나?"하고 말할 수 있지만,

나무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도 곧바로 자라고 싶지만 주변의 나무들과 햇빛 비추임 때문에 이렇게 자랄 수 밖에 없어"하고. 


나무가 휘거나, 눕거나, 울퉁불퉁하거나 그 나무의 모습은 나무의 환경과 조건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 때 그 시간 그 자리 장소에서 그렇게 해야 살수 있었고,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무의 현재 모습은 생존의 최선의 모습이었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나무의 선(善)입니다. 그 모습 자체가 좋은 것입니다.


용서는 무엇일까?

용서는 선을 향한 자기를 극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것을 향한 스스로의 자기 수고와 노력을 말합니다. 지금 내가 선을 하고 있다면, 용서는 현재의 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당신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을 속량하여 인간의 죄의 사슬을 끊고,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곧 예수님 자신을 극복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스스로 메시아의 사명 인간의 구원을 위한 자신을 희생과 속량의 제물로 내어 놓은, 스스로의 선한 일을 통하여 죄로 죽을 인간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용서는 선을 위하여 스스로 자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내가 선을 찾고, 진리를 찾고, 정의와 공정을 찾는 것이라면 스스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애를, 스스로 시작하면 용서하는 것입니다.

죄의 회개와 참회를 시작하면 용서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향한 자기 극복을 통해서 용서합니다.


용서란 선을 향한 수고와 노력입니다.

주님 부활의 증인 사도들이 외친 것은 이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하십시오."

           사도 2,38.40


허물과 부끄러움, 악습과 죄, 거짓과 악한 행위에서 회개하는 것. 그것이 용서를 이루는 것입니다.

기꺼이 상대를 선으로 받아들이고, 공정으로 식별하고 정의로 실천하는 것. 그것이 용서를 이루는 일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진심으로 상대를 믿고 신뢰하며 존중해주는 것을 통하는 것. 그것이 용서를 이루는 일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용서의 시작은 회개함에서 시작합니다. 용서의 시작은 공정과 정의를 따르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것. 그것이 용서입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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