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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선의 용기로(20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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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4-02-22 09:37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사람과 사람, 만남과 만남, 관계와 접촉 등에서 각가지 일과 사건이 발생합니다. 좋은 일, 나쁜 일, 평범한 일, 놀라운 

일, 즐겁고 기쁜 일, 환희와 환호의 일, 반대로 괴롭고 고통스러운일, 슬픔과 애통한 일 등이 일어납니다. 

  사람은 즐거움과 기쁨도 갖지만, 화를 내고 분노하며 어떤 경우는 증오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거나 결국은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다. 이런 일과 사건, 이런 만남과 관계에서 긍정적일 때 보다, 

부정적이거나 그렇게 결과 지어질 때 어렵습니다. 

 

  그를 받아들일 수 없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대상을 용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그런 사람에 

대해서 '용서'란 말을 떠올리는 것 조차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줄곧 가족과 자녀들, 집안과 형제들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하는 일 족족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압박을 하고 괴로움을 가중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꼴이란 선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는 것 조차 싫습니다. 이것을 어찌해야 

할까요?

 

  용서. 그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서 해야할 일입니다.  아는 가족이건, 지인이건. 그렇게 수용하기도 용서하기도 

그리고 용서란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은 사람을 보면서... 어찌 할 수 없은 내 입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그를 하느님께 보여드리고 내어드리는, 그 비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의 용기를 달라고 청합니다. 그 청함에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힘이 들 수 있습니다. 어찌 할 수 없고, 

가족도, 이웃도 어찌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이 용서의 시작입니다. 그분의 정의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더 해야할 일은 그 사람 외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용서'로서 다가가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어도 새로 만나는 이들을, 그 외에 사람들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용서할 수 없은 그 사람. 그 외에는 다른 사람의 용서를 시작합니다. 그들을 용서하면서 용서의 훈련을 

합니다. 그동안에 못했던 용서를 더 배워가면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할 수 없은 이. 그는 그가 살아온 

굴절되고 소외된 역사에서. 그가 그렇게 정서와 감정이 어그러지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고 의로움과 선함에 ]

동떨어진 역사가 있습니다. 사실 그도 어릴 적 피해자였고, 그 피해가 성인이 되고, 장년 노년이 되어도 그것을 

그대로 가진 채, 걸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이 만나는 새 가족, 자녀들, 친지들에게는 이런 

여정을 알아채리고 용서의 길로 나서는 현명함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모름의 용서와 앎의 용서는 다릅니다. 모를 

때는 무조건 미워하고 화와 분노 그리고 증오심까지 품지만, 앎에서는 그에 대한 과거의 여정을 되돌아 보면서 

측은지심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앎의 용서입니다. 아직까지 그를 용서할 수 없지만, 기도를 시작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으로 우리 모두에게 빛이, 그에게도 빛이 비쳐질 것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용서는 앎의 용서가 필요하고, 복음적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렇때 모두가 평화로울 것입니다.

  주님, 오늘도 복음, 적극적인 용서의 날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는 자 되게 하소서. 

더 앎을 사랑하며 용서하는 제자 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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