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빈첸시오 바로가기

게시판

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무지를 벗어나(2025.01.2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 25-01-24 10:26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들어라!. 겉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뜻을 들어라!" '들음'은 신실한 들음을 

뜻합니다. 번잡하고 복잡한 가운데에서는 생각이 이리저리 하고 오락가락합니다. 일과 과제, 만남과 교제도 

산만합니다. 온통 다양한 정보에 다가가고 자기가 선호하는 장면, 일이나, 사람, 사건, 사물에 집중합니다. 

돈이나 자본, 취미나 취향, 음식이나 의복, 특정한 정치와 사건에 매몰됩니다.

 

  주변을 바라보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 크게 반응하고 심하게 공격합니다. 

이해와 용서에 대해서 부드럽거나 평탄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가 자기 피해와 그 의식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린이나 

자녀들, 가족들에게 그런 피해를 받지 않도록 방어적으로 설명합니다. 선의와 진리, 사랑과 정의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와 공격의 방법론을 선호하고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 외면, 방어, 폐쇄 그리고 공격 등을 일상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너, 이웃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 방어의 유아독존적 삶을 살고 있습니까? 조금만 피해를 보거나 상대의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가지고 있습니까?

 

  무지. 앎이 없는 것. 지식이 없음을 말합니다. 무지의 사람은 지혜와 슬기에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겉은 멀쩡한 데 

그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은 무지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른 이라하면 슬기와 지혜를 가지고 있는 이. 그 지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혜와 슬기는 커녕 무지한 이로서 자신의 수치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수치를 

주고 오만하게 생활합니다. 그것은 그가 무지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듣지 않는 이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경청하지 않은 이는 겸손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귀를 열지 않는 이는 배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귀를 열고 듣고 있습니까? 말하기보다 듣기를 먼저 합니까? 듣지 못하는 이는 말하기를 먼저하고 선과 

진리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 인간의 편의와 즐거움, 자기 상처와 아픔만을 토로하고, 또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상대를 억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용서란 멀리, 아주 멀리 있습니다. 그가 들으려 하지 않으니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기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지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지식에다 지혜를 슬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듣지 않아 무지인 사람들은 용서에서 멀리 있습니다. 용서를 할 줄 모릅니다. 용서와 무관하게 살아갑니다. 무지인 

사람들은 사랑할 줄도 자비를 베풀 줄도 모릅니다. 무지인 사람은 자기가 크다고 힘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특히 나의 무지를 벗기 위해서 '들음'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듣는 이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이는 용서가 어렵습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용서는 듣는 이에게서 이루어집니다. 서로 듣고 배우도록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용서의 

길로 나설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선함으로 진리로 그리고 정의와 공정으로 듣게 하소서. 그 들음에서 생명의 샘을 발견하고 그것을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들음에서 용서가 이루어짐을 알게 하소서. 들음에서 무지를 벗어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