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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용서의 넉넉함에서(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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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99회 작성일 19-06-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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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성령을 청하며 살아갑니다. 성령의 마음으로 그의 죄와 잘못을, 용서해 갈 수 있습니다. 상대의 죄, 악행을 바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고통과 피해도 있지만, 엄연히 그의 악행과 죄과가 남아있습니다. 그의 악행과 죄과가 남아있는 한, 그가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죄와 악행을 하느님의 진노에 맡깁니다(로마 12, 19).


우리가 또한 그의 악행과 죄과를 바로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를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또한 용서할 수 없어서,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아니라, 그가 회개하여 죄가 지워지기를 바라는 것이고, 생명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른 인생길을 가고 하느님 앞에서 구원받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악한 죄인이라도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가 죄에서 돌아서고, 회개의 행위를 보이며, 바른 인생길로 가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입니다.


요즘 산에가면 나무가 무성합니다. 나무잎도 크고 짙푸릅니다. 벌레들이 나무잎에서 쉬어갑니다. 나무잎을 갉아 먹습니다. 벌레들이 나무잎에다가 뒤로 봅니다. 그러나 잎들은 그것을 그대로 허용합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나무들은 더 많은 잎을 냅니다. 벌레들이 갉아 먹었다고, 괴롭다고 손해보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벌레들에게 나무잎은 쉼의 자리가 되어주고, 그늘이 되어주고, 양식이 되어줍니다. 더 많은 잎을 냅니다. 나무는 그렇게 하고서도 스스로 잘했다고 하지 않지 않습니다.


자연은 내어주고 더 많이 내어 줍니다. 베풀고 더 베풉니다. 주고 또 더 줍니다. 자연은 죽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한없이 내어줍니다. 반면에 인간은 갖고 더 갖습니다. 붙잡고 또 붙잡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욕심과 탐욕 때문에 수 많은 자연 생명을 죽입니다. 그러면서도 양심의 꺼리낌을 갖지 않습니다. 그것이 잘못이요, 죄임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은 잘못을 모르는, 무지의 인간입니다.


자연은 넉넉하고 베풀고 나눕니다. 한없이 나누어줍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색하고 이기적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자연을 마음대로 훼손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릇된 폭군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인색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과 탐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받은 아픔과 고통이 있고, 또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 가지고 있는 이기심과 욕심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내가 부(富)하고 소유하고 있는 것. 또한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더 지식을 갖고 있고, 또 내가 그보다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의 잘못도, 죄도, 그의 허물과, 그의 단점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죄를 짓거나 잘못한 사람은 자기 죄도, 악행도, 잘못도 모릅니다. 그가 죄를 짓고 악행하는 것은 그가 정의를 모르고 악행의 결과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금껏 배운대로 그렇게 합니다. 

그가 선, 진리, 정의, 평화를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죄를 짓거나 악행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선을 배우지 못했고, 진리를 배우거나 깨닫지 못했습니다.


앎은 사랑이고 선의 행함입니다.


부모가 그에게, 스승이 그에게, 형제들이 그에게, 교회와 사회가 그에게 진리와 정의, 선과 사랑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악행과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책벌도 해야 하지만, 그 죄와 악행의 원인과 결과를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죄와 악행을 일삼는 이들에 대해서 그를 책벌하고 단죄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선, 정의 , 진리, 평화를 전달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또한 사회인이고 세상 속에 살아야 할 사람들이고, 또 그들도 우리와 같이 행복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마태 6,8). 내가 상대의 죄와 악행으로, 그의 폭력으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 지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나의 아픔과 고통을 먼저 아시고 개입하시며 풀어주십니다. 그분을 잊지 않고 놓지 않는 사람들의 길을 열어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고 하였습니다(마태 6,14-16).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하는 이는 선을 앎니다. 진리를 알고 정의을 알고 그리고 평화를 압니다. 용서하는 이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알고 그 축복을 압니다. 그래서 죄인의 죄와 악행을 용서해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속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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