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진리에서 생명이(20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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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6회 작성일 25-05-02 09:47본문
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관용적인가? 온유한가? 중용을 지키고 살아가는가?를 생각합니다.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어떤 이의 실수나 미숙으로 인하여 불편함을 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나의 일상의 조건과 환경이 다른 사람이 다가오거나 주변에 있으면, 피하기도 하고, 괜시리 기분을 상하면서 마음이 굳어지고, 공격적인 마음이나 자세를 갖는 이가 있습니다.
조용히 말하거나 온유하게 관용적으로 말해도 되는 것을, 퉁명스럽게 보복하듯이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에게 평안과 평화, 자비심과 자애심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찌 이런 이들이 진리를 이야기 할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 생명의 길을 전달할 수 있을까요? 어찌 그가 다른 이들에게 좋은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 그들은 세상 살이를 하는 이들. 세속적 가치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다만 세속적 필요와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선으로 인도하지 못하다고 한다면, 그 자신도 험하게 되지만, 그와 함께 있는 공동체들에게도 욕을 먹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주님의 제자들. 그들은 달라도, 분명하게, 선하게 달라야 합니다. 종종 우리는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과 무엇으로 다른가? 나는 어떤 모습과 자세로 다른가?
줄곧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으로 나를 증명하는가? 나는 그것으로 주님의 제자임을 드러내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빛으로서, 소금으로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동안 나는 무슨 빛을 비추었으며, 어떤 방부제와 맛을 냈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 주님의 제자들은 달라도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리스도인 처럼 살지 않고, 주님의 제자이면서도 주님의 제자로서 그 참됨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자신에게도 불충하고, 또한 주님 앞에서도 그러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나의 오른 뺨을 칠 때, 다른 뺨 마저 돌려 대라.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 주어라. 천 걸음을 가자고 하거든, 그에게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의 말씀을 듣습니다(마태 5,40-41).
좀더 상대에게 관용적이어야 합니다. 얼마간의 손해에도 그렇게 급작스럽게 반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나 허물에 대해서, 그렇게 공격적으로 꾸짖거나 꼬집고 매질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 그가 지금껏 그것을 수선하거나 개선하지 못했다면, 하루 아침에 그의 허물과 허실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잘못하고 허물이 있는 것은 오래된 그의 악습이거나, 부끄러운 습관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선한 길을 가리키는 임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쨓든 그는 허물이나 부끄러움, 그런 악습을 고치지 못했고, 그것을 짐으로 지고 가고 있는 무거운 짐을 진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는 것보다 그가 가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측음지심으로 이해하기 바랍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기도하는 가운데 나나 그를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는 내가 먼저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가 먼저 생명을 따라야 합니다. 스스로 진리와 생명을 살아야 합니다. 자연스레 그 상대가 빛나는, 나의 빛을 받아야 하고, 나의 생수의, 생명의 물을 마시도록 해야 합니다. 일부러 의도적으로 라도.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생수를 전달하기 바랍니다. 나의 빛과 소금의 역할의 지속함이 그를 새롭고 바르게 바뀌게 할 것입니다.
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제가 주님의 진리의 길을 스스로 살게 하소서. 어떤 곤난이 와도 그 진리의길.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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