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더 잘게 부수는(202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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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06-12 09:33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연장이 있어야 잘게 부술 수 있습니다. 굳은 돌덩이를 부수는 것. 맨손으로 부술 수 없습니다. 연장이나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돌덩이를 부수면 모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모래로 밭을 고를 수 있고, 벽돌을 만들고, 벽을 쌓는 매지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래로 콘크리트를 부을 수 도 있습니다. 돌덩이를 가지고 할 수 없는 모든 작업을 모래는 할 수 있습니다.
옹쳐진 실. 무수히 엉켜있는 실타래의 실 묶임을 풀 수 있는 것. 그 실마리를 찾고 하나 하나 한 올 한 올 풀어가면 모든 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푼 실을 가지고 밧줄을 만들 수 있고, 거대한 배도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옹쳐진 것을 푼다는 것을 필요를 마련하고 이루고자 하는 일을 그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인간사에서 여러 면, 갖가지로 옹쳐진 일이 있습니다. 상대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시기와 미움이 있는 것은 내가 그에게 묶인 것이 있습니다. 그가 나를 묶고 누르고 조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에서 풀리지 않으면 나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에 대한 그가 그의 잘못과 악행과 죄를 풀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 법이나 규범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풀려고 하고 또 풀어야 합니다. 나에게 묶인 것을 그대로 두고 지나치는 법은 없습니다. 묶여있거나 조여 있거나, 눌려 있을 때,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고, 결국은 나는 죽음에 도달해 갑니다. 나나 그나 묶이고 조여지고 눌려진 것을 푸는 것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자유를, 해방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나의 삶을 옹쳐지게 하고 곧 누르고 조이고 묶인 일이 있을 경우에 나도 숨이 막혀서 죽어 가는 것이지만, 나는 그것을 잊고 털어버리고 벗어버리면 더 이상의 죽음은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그가 그것을 풀 생각을 하지 않거나, 푸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은, 그는 죽음, 영원한 죽음의 터널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에 의해서 옹쳐진 것에 대한 나에게 대한 사과와 보상을 하면 그것이 최상이고 그도 나도 용서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가 용서를 받지만, 그가 그런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은 경우, 그는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에서 곧 죽음의 지경에서 살아남을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용서에 관한, 화해에 관한 말씀을 주님께로 부터 듣습니다. 우리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는 데, 나에게 원망을 품고있는 이가 생각이 나면,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놓아 두고 물러가서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한다.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친다(마태 5,24). 이는 우리의 화해가 단지 그냥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진정어린 대화와 마음의 교감과 주고 받는 선한 마음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화해와 용서의 길을 말합니다.
엉킨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고, 굳은 돌덩이를 연장으로 잘게 부수는 그런 수고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풀리고, 모두 잘게 부수어지는 화해와 용서를 하라는 것. 그것이 용서의 길로 나아가는 것임을 말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 옹쳐진 실타래의 실마리를 찾으십시오. 그것 부터 시작하여 한 올 한 올 풀어가십시오. 굳어지고 딱딱한 것을 잘게 부수십시오. 수고와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런 수고는 아름답습니다. 모두가 살고 모두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화해의 길에 나아갑니다. 그 길을 통해서 자유를 얻고 해방을 맞이하게 하소서. 당신께 기쁨을 드리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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