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함. 모두의 생명을(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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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34회 작성일 25-11-17 10:46본문
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얻기 위해 청합니다. 만나기 위해 두드립니다. 우리가 필요를 얻고 청하기 위해서 두드립니다. 간청하는 것은 필요가 반드시 충족되고 필요가 채워져야 하기 때문에 간청합니다.
어떤 이는 먹고 살아야 하기에 청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더 벌기위해 청하고 두드립니다. 먹고 사는 것은 그럭저럭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생존에 걸려 있는 것. 즉 자녀들의 학교, 직장, 병고, 가족들에 대한 것은 간청합니다. 삶과 생활과 그의 생존에 관한 것을 그렇게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청하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서 우리는 그 양식이 필요합니다. 그 양식이 세상 살이 하는 가운데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주시기에 그것을 청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분께서 베푸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청하면서도 영원한 양식을 위해서도 청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청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것입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 살이에서는 모두가 하나같이 기운을 잃어가고 언젠가는 소멸의 운명을 겪습니다. 그런 존재입니다. 인간의 기운은 쇠하면서 그 종착지가 있습니다. 필연. 그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청해야 하고, 또 건강하고 살아있을 때 그 생명을 청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청하면서도 또한 영원한 양식을 위해서도 청합니다. 영원한 양식은 공동체에 연관이 있습니다. 곧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위타의 것. 다른 이를 위한 청함입니다. 그는 아직 미약하고 미숙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 그를 위하여 청원합니다. 어떤 경우는 그를 위한 하느님께 간원합니다. 친하지도 않은데도 말입니다. 사실 그가 누구라도 지금껏 살아온 길. 그 소멸의 늪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늪에서는 그가 살 수 없고,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가 그 늪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단지 기도만이 아니라 행위의 기도를 합니다. 행위의 기도는 그와 대화하고 만나는 것. 그의 살아남을 위하여 길을 알려주고 함께 동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야 그가 그 늪에서 탈출하여 좋은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위해서 청하고 찾고 두드려서 소생하고 걸어가고 달려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가 제 몫을 하고 주님을 향한 자신의 은사를 통해서 봉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가 선행하는 이가 되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의 청함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청함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와 모두를 위한 곧 영원한 양식을 위한, 형제들을 위한, 청함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양식의 청함은 대상인 '나'를 위한 청함이요, 그리고 다른 형제들을 위한 '청함'입니다. 이 청함은 우리 모두를 위한 행위의 기도, 주님의 뜻에 따른 공동을 위한 실천적 사랑과 선과 그 봉사의 지속을 말합니다.
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나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와 모두를 위하여 간청합니다. 그 청함을 통해서 그분께서 받아 주시고 당신의 것으로 삼아 주십니다. 일용할 양식과 더불어 영원한 양식까지 내 주십니다.
주님, 오늘 청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소서. 특히 형제의 소생과 걸어감과 그 참 목적길을 위해서 행위의 기도를 통하여 간청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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