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구원을 향해(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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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3회 작성일 25-11-27 09:39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양파가 있습니다. 양파 껍질은 진주황색입니다. 그러나 껍질 안쪽은 푸른 색이 있고, 푸른색이 옅어지지고 더 깊게 들어가면 흰색이 됩니다. 햇빛과 자연의 조건이 미치는 바깥과 내부와 다른 모습입니다. 각 부분이 여러 형태로 변화의 모습이 있습니다. 생물들도 모두 그런 다양한 내부와 부위가 있습니다. 나무들도 껍질, 속껍질, 알기둥이 나오고 또 나이테의, 자라는 부분 나옵니다. 각기 다른 형태와 내부 모습이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람에게도 나타납니다. 처음 만나게 될 때, 연이어서 만날 때, 현재의 만남에서도 변화가 있습니다. 처음 볼 때과 어제 볼 때와 또 오늘 볼 때가 다릅니다. 양파 껍질의 벗겨낼 수록, 다르고 색깔과 내부가 비슷하거나 다르게 보이듯이 그렇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변화하였고, 변해왔습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변화된 그 모습이 경이롭고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은 그 변화 이전의 것을 보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알고 배우게 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지식과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 안에서 또한 새로운 것. 새로운 뜻을 보게 됩니다.
아! 그렇구나! 이런 것도 있구나! 이런 일도 있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새롭게 보기도 하지만, 그에 대해서 의구심과 의심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을 불편하게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지?할 필요도 없습니다.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누구나 그런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불편하거나 설령 실망을 했다 하더라도 그 순간 그것을 떨쳐버리기 바랍니다. 그것이 불편함으로 혼돈으로 남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 불편함 등이 하등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 어느 날 그것이 그에게, 부지부식간에,스며들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의 탓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또 다른 사람의 탓도 아닙니다. 어느 자리 어느 시간 언젠가 그에게 그것이 스며들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가 바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 시간, 그 시기 그 시절에 스며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그것을 용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그와의 만남에서 선과 사랑의 만남, 자비와 평화, 이해와 격려의 만남으로 바꾸어 나갑니다. 또한 이것이 그에게 스며들게 되며, 이것이 그의 삶의 자리가 되고 양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함과 사랑, 자비와 평화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며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스며들어 가게 해야 합니다. 그에게서 자비와 사랑이 흐르게 합니다.
용서는 과거가 그렇게 되었던, 흘러왔던 간에 설령 그가 그것에 묶여있고 눌려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그에게 스며들어 왔던 간에 오늘부터 새로운 생수를 흘려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혼탁한 곳에 깨끗한 샘물을 흘려 보낸다고 해서 갑자기 그의 수로가 깨끗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끊임이 없으면 그 수로는 깨끗해집니다. 그렇게 과거에 스며든 물을 흘려 보낼 수 있는 믿음과 성실함과 자비가 필요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용서는 의구심과 불편함과 실망을 버리고 끊임없이 선과 사랑, 자비와 평온의 마음으로 스며들고 흘리기를 바랍니다. 지속되는 생수의 흐름은 그 수로를 반드시 깨끗하게 하고 모두가 마실 수 있는 생명수가 됩니다. 생수가 흐르고 기꺼이 흘려 보낼 수 있을 때, 용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선과 자비, 사랑과 기쁨을 전하고 나눕니다. 용서의 원천을 만나고 그 원천에서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도 선과 자비가 흐르게 하소서. 사랑과 관용, 이해와 격려가 흐르게 하소서. 용서가 실현되게 하소서. 용서가 구원이 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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