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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길, 측은의 마음(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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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332회 작성일 20-01-10 10:07

본문

금요일은 길과 진리의 날입니다.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예수님이 진리의 길입니다.

바른 길을 걷는 이는 그 참 목적지에 이릅니다. 그 종점에 도착합니다.


길을 걷는 이의 성품에서 그 목적지가 보입니다. 그의 성품이 곧 목적지를 예비합니다.

성품은 앎, 가치, 행위, 희망을 담는 그릇입니다. 됨됨이의 그릇 입니다. 사람의 그릇입니다. 그릇은 실행으로 표현됩니다. 그가 말하고 생각할 때, 그 행위로써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성품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성품에서 기쁨의 길이 나왔습니다. 그 기쁨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 기쁨의 길은 치유가 되고 해방이 되었고, 구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의 원천은 측은한 마음, 측은지심입니다. 예수님은 줄곧 그 성품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자애와 자비를 말합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누가 당신 같습니까?

당신께서는 가련한 이를 그보다 힘센 자에게서,

가련한 이와 불쌍한 이를 약탈자에게서 구해주십니다."

   시편 35,10


"하느님, 당신 사애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시편 51,3


가난한 이와 불쌍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억압속에서 고난과 고통속에 울부짖고 있을 때, 그들의 손에서 구하여 더 좋은 땅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탈출 3,9).


예수님의 치유과 고치심, 구마 그리고 그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측음한 마음'마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치유할 때 그 가엾은 마음으로 아픈 이들과 고통받은 이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나병환자를 고칠 때도 그렇하였습니다(마르 1,41).


그분은 모든 만남과 일과 사건 속에서 그 측은한 마음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측은한 마음을 자비와 사랑을 알지 못하고, 법으로 단정하고 규정하는 사람에게 노기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완고함을 슬퍼하심으로 나타났습니다(마르 3,5).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의 간절함과 퍼져 나감을 위하여 열두 사도를 뽑고 파견하는 것도 그 측은지심에서 였습니다(마트 3,14).


예수님의 측은지심이 단지 한 인간의 소극적 품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측은지심은 자신과 모든 사람, 모든 세대 사람들을 구원하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품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측은지심은 세상을 죄로 구원할, 십자가의 속량 제물로 자신을 내어놓기 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측은지심은 자기를 못박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를이 무슨일을 하는 지 모릅니다."

루카 23,34


우리가 걸어가는 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는 길. 그 성품을 닮고자 합니다. 그 성품은 '측은한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힘있고, 가지고 있고, 뽐내고, 자랑하는 이에게 측은지심을 갖기 어렵습니다. 약하고, 가지고 있지 않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자기를 미소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그 측은지심을 갖습니다.


그 측은지심으로,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분 마음을, 그 성품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그 측은지심이 거룩한 마음, 참 사랑의 마음, 구원의 마음입니다. 그 성품으로 살아갑니다.


금요일은 길과 진리의 날입니다.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주님의 길을 찾습니다. 측은지심, 가엾이 여기는 길을 찾습니다. 모든 일과 만남, 그 사건 속에서 측은지심을 찾아 함께 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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