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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그 위대함이(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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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2-05-12 09:36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나무가 상처를 입으면 바로 진물을 내고, 찢겨진 부분을 덮는 노력을 합니다. 벗겨진 껍질을 회복하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상대의 잘못을 이해합니다. 시간을 통해서 용서해 줍니다. 끝에는 그가 죄를 삭쳐주고 죄 없다고 결정합니다. 

용서의 과정과 결과입니다.

 

상대의 허물과 한계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오래된 상처, 딱딱하게 굳은 딱지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으로 오랫동안 어쩔수 없이 소외된 상태로 살아온 것을 보면 좋겠습니다. 

그의 변하지 않은 모습과 악관이 남아있는 이유를 그 원인을 알면 좋겠습니다. 

 

깨닫지 못하고, '무지'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새로 더불어 허물과 한계를 풀어갈 수 있는 첫 단추를 알고 그의 소외가 무엇인지 알고 그 소외를 풀어주는 

노력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의 잘못된 습관과 행위가 얼마나 숨막히는 일인지. 그도 알지 못하는 무지인지를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용서란 그의 허물를 보는 것 부터 시작합니다. 

용서란 그의 한계를 아는 것 부터 시작합니다.

용서란 그런 것을 알고 기도함으로서 시작합니다

용서란 그와의 대면과 대화에서 시작합니다. 대화와 공감없이 용서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용서란 그의 소외가 언제부터 인지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소외를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는 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란 그의 소외와 함께 무지가 어떤 습관과 악습을 낳았는지 아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생각합니다. 그의 무지로 인하여 그의 악습과 행위로 인하여 가족이나 공동체 형제들이 받은 상처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그것을 방관할 수 있는 것인가? 그 책임을 면제하자는 것인가? 할 수도 있습니다.

실상 이런 공동체의 아픔은 그 행위를 한 사람만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함께 져야 하는 것.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고 풀어가고 하는 것. 그래야 그 무지의 또다른 소외가 생기지 않게 되며, 

그 다음에는 서로 온전한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무지의 사람이거나, 그런 공동체는 그 책임이 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선과 진리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함께 협력하여 기도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약하거나 가진 것이 없거나 힘이나 영예롭지 않을 때는 그와 만남이 손쉽지만, 그가 강하거나 가진 것이 있거나 

힘이나 영예를 가지고 있다면 그를 만나기가 손쉽지 않으며 그의 무지를 해결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용서는 그이 약함과 강함, 가지지 못했거나 소유에 상관 없이, 힘과 영예에 소유 여부에 상관없이 그의 무지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그와 만남을 피하지 않고 대화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면 용서의 길은 만남과 대화와 

선함과 참됨을 나누면서 이해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함께 찾음에서 그 만남에서 그도 나도 

참으로 자유를 얻고 해방을 얻습니다.

사람이 위대한 것은 그가 용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용서할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

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기에 끝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실상 하느님을 경외함에서 용서가 이루어지고,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용서를 향하여 기도하고 다가가는 이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이끌어가십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주님, 형제의 허물을 알도록 이끄소서. 그의 한계를 보도록 깨달음을 주소서. 그의 소외와 무지를 분명히 알게 하소서. 

그가 앎으로 깨닫고 깨달음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그 실천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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