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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성찰하는 나(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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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2-06-0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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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손뼉을 마주 쳐야 소리가 납니다. 손을 잡아야 함께 나갈 수 있고 나갈 수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 합니다. 

혼자가기는 쉬워도 함께 가는 것을 더디고 힘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가야 그 참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유일한 하느님이시다, 함께 더불어 공동체로 

하나되신 하느님이십니다.

 

용서를 말할 때, 용서는 나만의 용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가 그 용서의 뜻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용서를 말하는 것은 내가 먼저 용서를 시작하는 것. 너, 그가 용서를 그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회심을 통해서 선의로의

길로 들어설 때 비로소 용서가 됩니다.

 

용서는 나의 자비가 나의 사랑이 작용합니다. 그리고 용서는 회심과 회개로 이어집니다. 그렇고 나서 나나 그나,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할 때 비로소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용서할 때 나는 용서에서 그 어둠에서 탈피하고 자유를 얻습니다. 나는 나의 어둠과 죄의 틀을 벗어납니다. 

그가 진정 나의 용서의 마음을 알고, 그가 잘못과 죄에서 돌아설 때, 비로소 용서가 됩니다. 

그가 죄 중에 남아있고, 그릇됨에서 옳음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용서. 그 용서는 스스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나 그나 자비와 사랑, 선과 진리의 길도 들어설 때, 용서를 받으며 실상 나의 자비와 사랑은 처음부터 선과 진리, 

정의와 공정을 품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그가 용서에 초대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초대만으로 용서는 아름답고 찬란합니다.

 

인간 만이 회심하고 되돌아 보며 성찰합니다. 새나 동물들, 생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그 훈련을 통해서 

싸우거나 피하거나 도망칩니다. 존재론적인 자기 생명의 수호를 위해서입니다.

 

인간 되돌아 보는 존재, 회심하고 성찰하는 존재입니다. 그 성찰은 싸울 수도 있고 피할 수 도 있으며 도망을 갈 수도

다. 그러나 인간의 성찰은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 성찰합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더욱이 실제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위해서도 자기를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성찰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단지 싸우기만하고 피하기만 하고 도망을 다니기만 한다면 그것은 성찰하는 영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성찰하는 이는 더 깊은 사랑과 자비, 선과 용서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찰하는 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용서한다는 것. 나는 성찰하는 이고, 회심하며 회개하고 선과 진리를 아는 이 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주님, 제가 성찰하는 이 되게 하소서. 선과 진리, 사랑과 자비, 용서와 평화를 성찰하고 모두가 선을 따라 걷게하는 데 

나아가게 하소서. 용서가 선을 향한 깊은 성찰에서 나옴을 알게 하시고, 기꺼이 그 길을 따르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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