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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청함, 보고 들음에서(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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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2-07-0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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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마태 7,7-8

 

새들이 예민할 때는 새끼를 기를 때입니다. 더 큰 새가 다가와도 어미새는 그들을 몰아냅니다. 

새끼를 훈련시킬 때, 주위의 다른 새들이나 사람들이 오는 것을 경계하며 앙칼진 소리를 냅니다. 

경계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대상과 다른 것들에게 요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새끼가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청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였습니다. 필요할 때, 간절할 때 그렇게 하라. 요청하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말씀입니까? 주님께서 친히 청과 찾음과 두드림을 우리에게 요청하였으니까요.

 

실상 청하려고 하려면 먼저 보고 들음이 선행됩니다. 그래야 깨달음이 있습니다. 

 

상대의 허물과 부족함을 보게 됩니다. 그의 허약함과 잘못을 보게 됩니다. 

그의 허물과 부족함, 허약함과 잘못을 볼 때 그에게 청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고, 또 어떤 문을 두드릴 수 있습니다. 

그의 허약함과 잘못을 보지 못하면 제대로 청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의 허물과 부족함을, 허약함과 잘못을 보게 될 때 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을 들어야 합니다. 

보는 것은 들음에서 확인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습니다. 보거는 또한 듣도록 하십시오. 

바라봄, 곧 봄과 들음을 통해서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서 청할 수 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않은 청함은 방향을 잃을 수 있고, 오히려 그나 나나 서로 상처가 되고 좌절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서로 막힘이, 닫게 되고 더 이상 좋은 것 선한 것을 나눌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갈라지고 상처입어 굳어짐으로 계속 남아있어 부정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결과라면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오, 선과 행복이 아닙니다. 

모든 만남은 좋음이요 선이요 끝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주님 좋아하시고 공동체도 그리고 나도 기쁘고 행복합니다.

 

청하십시오. 찾고 두드리십시오. 주님께서 크게 바라시고 원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복을 받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과의 만남, 모든 관계에서 무조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 만이 아니라, 

그와의 만남과 관계에서, 좋은 것과 선한 것도, 허물과 부족함, 허약함과 잘못의 경우라도, 무엇보다도 

먼저 바라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과 만남과 사건에 대한 들음, 경청이 있어야 합니다.

 

보고 들음에서 청하는 것과 보고 듣지 않고 청하는 것은 사뭇 다릅니다. 

보고 들음에서 청하는 것은 거룩한 깨달음이 있고, 그 깨달음은 주님의 뜻과 그 방식으로 식별하여 청하는 것으로 

믿음과 함께 행위의 지속성의 근거를 갖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길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간구와 방법을

멈추거나 중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방식이고 또 예수님을 위해서 복음의 일로서, 그 길은 충만하며 

또 은혜가 흘러넘칩니다. 보고 들음을 통한, 깨달음과 식별을 통한 청함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청하고 찾고 두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발견하게 하시며 그 문을 열어주십니다. 

청함의 보고 들음의 그 식별을 통해서 주님께 요청합니다.

 

주님, 제가 볼 수 있게 하소서. 들을 수 있게 하소서. 

허약함과 허물, 부끄러움과 잘못도 보고 듣고 식별하게 하시며 당신의 선과 진리의 길에 따라 또 다시 요청하는 자 

되게 하소서. 당신의 선을 이루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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