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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훈화-빈첸시오 말씀

2024년 1월 빈첸시오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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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51회 작성일 24-01-1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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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월 빈첸시오 훈화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a Si)’

 

103항 기술 과학인 아름다움을 창출하여 물질세계의 인간이 아름다운 세계로 도약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 기술 작품, 항공기 로봇, AI(인공지능) 등 웅장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미술 작품, 음악 작품도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기술자,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이는 인간적 충만함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104항 핵 에너지, 생명 공학, 컴퓨터, 그리고 유전 정보 지식과 더불어 다른 많은 능력들이 엄청난 것들을 가져다 준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한편 기술 지식, 그것을 활용할 경제적 재원을 확보한 이들이 세계 전체와 세상을 강력하게 지배하게 해 왔습니다. 현재 그러한 힘의 용도를 보면 선의 지혜로운 활용이 보장되지는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이용되는 치명적 무기 등도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투하된 핵폭탄, 나치즘, 공산주의, 전체주의 정권들이 수백만 사람들을 살상한 무기 등 개발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전에 동원되는 치명적 무기도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 힘을 차지하는 것이 매우 위험합니다.

 

105항 사람들의 힘이 늘수록 진보되고, 안전, 유용성, 복지, 활력, 가치 충만의 증가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재와 선과 진리가 기술과 경제의 힘에서 생겨난다고 여깁니다. 현대인들은 힘을 올바로 사용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엄청난 기술 발전이 인간의 책임과 가치관과 양심의 발전이 함께 교육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그 시대가 가진 공동선의 조건과 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의 인류가 자신에게 당면한 도전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 규범 뿐 아니라, 유용성과 안전이 요청되는, 인간이 그 힘과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할 위험이 지속적으로 증가합니다. 인간의 자유가 무의식, 즉각적 욕구, 이기주의, 폭력의 맹목적 힘 앞에 무너질 때 병들게 됩니다. 인간이 과학 기술의 통제 수단 없으면, 커져만 가는 힘 앞에 무방비 노출될 수 있습니다. 한계를 정하고 자제력을 가르치는 윤리와 문화와 영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II.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의 세계화

106항 근본적인 문제는 심각하고 다른 것에 있습니다. 곧 인류 기술과 발전을 획일적이고 일차원적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습니다. 이 패러다임은 논리적 이성적 절차에 따라 외부 대상을 파악하여 지배하는 주체라는 개념이 나타납니다. 이 주체는 소유와 지배의 주체라는 개념입니다. 이 주체는 소유와 지배에서 변형의 기술로써 정립된 과학적 방법을 수립합니다. 이 주체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무형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연에 간섭해 왔습니다. 과거 오랫동안 사물 자체의 가능성을 존중하며 더불어 존재하는 것, 자연의 내어주고 받고 손을 내미는,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의 간섭으로 사물에서 최대한 모든 것을 이익을 뽑아내는 데에 관심을 쏟습니다. 인간과 사물은 더 이상 서로 다정한 손길을 건네지 않고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한 성장, 제약 없는 성장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경제학자, 금융, 기술자들은 여기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지구 자원을 무한히 활용할 수 있다는 거짓을 바탕으로, 지구의 그 한계를 넘어서 최대한 쥐어짜는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무한한 양의 에너지와 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그것들을 신속하게 재생할 수 있으며, 자연 질서의 착취에서 오는 부정적 결과들 쉽게 완화될 수 있다.는 그릇된 개념입니다.

 

역사연구회와 자선 협의회(교본 175)-복자 프레드릭 오자남(1813-1853)

빈첸시오의 탄생

프레드릭은 역사 연구회를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적 관점에서 배움의 증진 위한 협의회의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활동 회원이 되고 협의회는 토론과 연구의 장으로 발전되었습니다.

1833423일 프레드릭과 다른 학생 다섯과, 조언자 임마누엘 베일리와 함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자선 협의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베일리를 초대회장으로, 성 빈첸시오의 모범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기로 하였습니다. 빈첸시오 드 폴 사랑의 딸 회 소속 로잘리 랑뒤 수녀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로잘리 수녀는 파리 거리에서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프레드릭에게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들을 위한 사랑과 존경심으로 사도직 활동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프레드릭은 아멜리 스라크로를 만나 1841623일 리옹의 성 니지에 성당에서 혼인하였습니다. 그는 학문에 열정으로, 사도직에 대한 저서를 편찬하였습니다. 단테에 관한 논문, 프란치스코의 시, 게르만 연구 등이 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와 함께 아버지이나 남편, 작가, 선생으로서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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