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빈첸시오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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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1회 작성일 24-05-28 16:10본문
2024년 5월 빈첸시오 훈화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a Si)’
118 항 인간은 새로워지지 않으면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올바른 인간학 없이는 생태론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여러 존재들 가운데, 우연이나 물리적 결정론 산물로 여겨지면, 그들의 전반적 책임 의식이 약화됩니다. 그릇된 인간 중심주의에게 생태 중심주의의 자리를 내 줄 수 없습니다.
119 항 오늘날 생태적 위기가 근대의 윤리적, 문화적, 영적 위기의 발발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인간관계를 치유함 없이 자연과 환경과 맺은 관계에서 치유를 요청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사상은 모든 인간 가치를 인정하고 다른 이들을 존중합니다. 사랑하며 대화할 수 있는 ‘너’에게 마음을 열고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이끕니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관계가 분리된다면 생태적 아름다움으로 위장된 낭만적 개인주의가 될 것입니다.
120 항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자연 보호와 낙태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출산의 불편과 어려움이 있어도 인간 배아를 보호해야 합니다. 성가시거나 귀찮은 약한 존재들에 대해서 새 생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21 항 그리스도교는 고유한 정체성과 예수 그리스도 진리에 충실하면서 성찰하고 새로운 역사적 상황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그 영원한 새로움을 꽃피워야 합니다.
실천적 상대주의
122 항 그릇된 인간 중심주의는 그릇된 생활양식을 낳습니다. ‘복음의 기쁨’에서 실천적 상대주의가 교리적 상대주의 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인간이 자신을 중심으로 삼으면 당장의 유익을 우선 시 하여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됩니다. 만연된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과 인간 무한한 힘의 숭배와 더불어, 인간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무엇이든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곧 상대주의가 자라나는 것은 서로를 희생시키고, 환경과 사회의 부패를 낳는 논리가 담겨 있습니다.
123 항 상대주의 문화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단순한 대상으로 취급하여 강제 노동을 시키거나 빚의 명분으로 노예로 부리는 것 같은 질병입니다. 이런 논리로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이익에 보탬이 안 되는 노인을 유기합니다. 보이지 않은 힘이 경제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고 이런 힘이 사회와 자연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욕망과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서, 객관적 진리와 원칙이 없다면 인신 매매, 조직범죄, 마약 매매, 멸종 위기 동물 매매, 장기 구매 등 제한할 수 없습니다.
쓰고 버리는 논리도 마찬가지. 실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려는 무절제한 욕망으로 쓰레기가 양산됩니다. 환경에 해로운 행위에 대한 정치적 조치나 법의 힘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객관적 진리, 보편타당한 원칙들이 인정되고 법이 자의적으로 부과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빈첸시오회와 사회 정의(교본 177-178쪽)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1813-1853)
프레드릭 오자남은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정의와 자선의 조화를 이루는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추구하였습니다. 빈첸시오의 주 임무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의 만남, 봉사이며 빈첸시오의 목표는 영적, 도덕적, 그리고 인간적 발전이라고 하였습니다.
프레드릭 오자남은 1853년 9월 8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3년 7월 6일 가경자로, 1997년 8월 22일 복자로 시복하였습니다. 프레드릭 오자남의 축일은 9월 9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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